국민들의 반중 정서만 깊어지게 만든 올림픽이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지난 20일을 끝으로 17일간의 장정을 마무리했다.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2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해 종합 순위 14위로 대회를 마쳤다.
개막식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 4일 열린 대회 개막식에서는 중국 사회 각계 대표, 훈장 또는 명예 칭호 수여자, 56개 민족 대표 등이 참여한 ‘소시민들의 국기 전달’이라는 공연이 펼쳐졌다. 해당 공연에서 소수민족 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한 여성이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이 여성은 댕기머리를 한 채 분홍색 치마와 흰색 저고리를 입고 오성홍기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에 국내에선 “중국의 문화 공정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개막식에 한복 차림으로 참석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중국이 개막식을 통해 무엇을 알리려는 지는 이해하겠지만 이웃 국가 한국을 생각한다면 그런 부분을 세심하게 신경 썼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어진 쇼트트랙 경기에선 판정 시비가 연달아 일어나 국민들의 반중 정서가 극에 달했다.
지난 7일 황대헌과 이준서는 남자 쇼트트랙 1000m 준결승에서 1조 1위, 2조 2위로 레이스를 마치고도 석연치 않은 실격을 당했다. 두 선수의 황당한 탈락으로 중국 선수들이 결승에 진출했다. 특히 황대헌은 상대 선수와 충돌하지 않고 인코스를 파고들어 역전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실격 판정을 받았다. 심판진은 두 선수가 경합 과정에서 반칙을 했다고 판단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을 대신해 결승에 진출한 중국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편파판정에 국내 해설위원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박승희 SBS 해설위원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냐”라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냈다. 진선유 KBS 해설위원은 “나도 경기에 나가봤지만, 이번 경기는 편파판정 심했다고 생각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배성재 SBS 캐스터는 “(비디오 판독의) 혜택을 본 건 전부 중국 선수들”이라며 중국의 편파판정을 비판했다.
체육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등을 비롯해 많은 정치인들이 ‘올림픽 정신’을 지적하면서 선수들을 위로했다.
네티즌들 역시 화를 참지 못했다. 심화된 반중 정서로 네티즌은 SNS나 커뮤니티 등을 통해 중국을 비방했다. 누리꾼들은 “올림픽이 아니라 중화인민체전”, ‘눈뜨고 코베이징 올림픽’이라며 중국의 행태를 비꼬았다.
당시 경기를 지켜보던 김모(64)씨는 “편파 판정도 이런 편파 판정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최악의 올림픽이었다”고 분노를 표출했고, 양모(31)씨도 “올림픽 정신에 위반하는 경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선수단은 경기 종료 후 심판위원장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국제빙상경기연맹(ISU)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 또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다. 윤홍근 선수단장은 우리 선수들에게 억울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긴급 기자회견도 열기도 했다.
중국 내에서도 혐한 정서가 들끓었다. 누리꾼들이 한국 선수들의 SNS로 몰려가 테러를 일삼았다.
중국은 지난 5일 혼성계주 준결승에서 선수 간 터치를 하지 못하고 최하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심판 판정으로 2위 미국과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가 동시 실격되면서 각 조 2위까지 주어지는 결선 진출 티켓을 따냈고 이후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얻었다.
이 장면을 두고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맏형 곽윤기는 “중국이 우승하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억울하고 미안한 감정이 든다. ‘내가 꿈꿨던 금메달의 자리가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 때문에 한편으로 허무했다”고 말했다.
이에 중국 네티즌들은 곽윤기의 SNS에 욕설 댓글을 퍼부었다. 곽윤기는 해당 댓글과 메시지를 캡쳐해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한국 선수들과 한국 선수들을 응원한 연예인들의 SNS에는 욕설이 담긴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미국 매체 CNN은 “한국에서는 ‘너희들끼리만 올림픽을 하라’는 해시태그가 SNS 상에서 유행했으며 황대헌의 SNS은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의 ‘싸움의 장’이 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외신은 이번 국내 반중 정서 원인을 과거 김치 표기 논쟁, 사드 배치 갈등 등에서 시작해 올림픽까지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CNN은 “양국 간 문화 전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며 “지난해 한국의 전통 음식인 김치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미국 매체 워싱턴포스트는 올림픽이 끝날 무렵 “개막식에서 중국 출연진이 한국 전통 의상인 한복을 입고 나온 것을 시작으로 쇼트트랙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이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연거푸 실격당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