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수급난으로 자동차 가격이 상승하는 카플레이션(Car+Inflation)이 본격화하면서 자동차 업체들이 상품성을 개선한 연식 변경 모델을 선보이며 일제히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이에 소비자들 사이에서 계약 당시 약정된 금액으로 차량을 부담할 수 있도록 약관을 개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 상승과 국제 정세 악화 등의 이유로 올해 차량 가격이 전년 대비 평균 3~5% 증가했다. 특히 연식변경 모델은 풀체인지(완전변경)된 모델과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와 달리 디자인과 성능에 큰 변화가 없음에도 기존 모델에 비해 가격이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가 지난 11일 출시한 연식변경모델인 ‘2022 그랜저’도 1년 전 모델보다 88만~172만원 인상했다. 익스클루시브 모델의 인상 폭이 가장 컸는데 3.3 가솔린의 경우 177만원, 하이브리드 모델은 192만원을 올렸다.
차량 계약 후 출고까지 약 8개월이 소요되는 현대차 아반떼의 경우(4월 기준) 22년형 연식변경 모델이 출시되면서 가격이 약 152만원 인상됐다. 기아가 최근 출시한 준대형 세단 K8 연식변경 모델의 가격은 트림에 따라 최대 60만원 넘게 올랐다. 지난달 제네시스가 출시한 GV70의 연식변경 모델 가격도 4791만원에서 4904만원으로 113만원 인상됐다. 올해 초 기아가 출시한 모하비의 경우도 4869만~5694만원에서 4958만~5781만원으로 올랐고, 현대차 코나 가격도 2.0 가솔린 기준 1962만~2648만원에서 2144만~2707만원으로 인상됐다.
기존 21년형 차량 계약자들도 올해 차량을 받을 경우 계약 당시 가격보다 인상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이에 소비자들의 불만은 커져가지만 제조사는 공정거래위원회 '자동차(신차) 매매 약관' 제2조 3항에 따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약관에 따르면 "계약 성립 후 자동차 인수 전에 자동차의 설계·사양의 변경 등으로 계약서 기재 내용대로 자동차의 인도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갑은 을에게 변경된 사양의 자동차 내역(차종, 색상, 선택사양, 변동된 자동차 가격 등 거래 조건) 및 계약해제 여부에 대한 효과를 통지"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존 계약자는 쉽사리 계약 파기를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계약자가 변동된 금액에 불만을 가져 계약을 파기하거나 출고 후 기간 내 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다음 순번의 계약자에게 차량 인수 권리가 양도된다. 재계약을 하더라도 다시 수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에 계약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추가 금액을 지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소비자들이 계약 당시 약정된 금액으로 차량을 부담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비자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완성차 업체가 계약 이후 언제든지 일부 옵션 및 트림 조정을 해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부당한 계약이며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일방적인 갑질"이라면서 "소비자는 구입한 자동차에 대해 계약 당시의 옵션과 가격으로 차량을 인도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조사는 인도 지연에 따른 책임이 제조사에 있음을 자각하고 가격 인상에 대한 일방적인 통보행위를 중단하고 초기 계약 시 제시했던 금액 그대로 소비자가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변동 사항만 통지하면 가능하도록 한 기업 중심적이고 불공정한 약관을 개정하고, 제조사의 철저한 이행을 강구해 소비자 권익을 증진시켜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근 들어 차량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 같은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해당 사항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은 기자 seb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