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몽고반점’을 달고 태어났다. 하긴 나뿐 만은 아닐 것이다. 몽골계 아시아인 출생아의 팔 할에서 나타나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하다. 의학적으로 몽고반점의 이유는 멜라닌 색소가 진피에 생긴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 아직까지 그 발생 원인은 명확히 규명된 것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엉덩이에 있는 푸른 반점인 '몽고반점'은 대부분 엉덩이에 있기도 하고 등 가운데, 또는 손등과 둔부에 있기도 한다. 대부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외부에 노출되는 부위가 유아기를 지나서도 남아있을 경우 신경이 쓰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혁신적 기술로 진일보하는 레이저 치료를 통해 그 흔적이 희미해지니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의학적으로 규명된 근거가 취약하기에 몽고반점에 관한 온갖 속설이 판을 친다. 대표적인 속설은 과거 원나라에 침략당한 우리 민족에게 몽골인의 유전자가 널리 퍼진 서글픈 흔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져 한민족의 뿌리가 몽골인과 같았음을 증명하는 유전적 근거라는 루머도 있다. 여태까지 이를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나도 한때 그랬다. 그래도‘몽고반점’이 중국음식점 이름이라고 우기는 사람들보단 낫다.
팩트 체크를 해보면 몽골제국에 점령된 적 없는 일본과 몽골과 교류가 드물었던 동남아시아, 남미, 남태평양 원주민에게도‘몽고반점’은 매우 드넓게 분포되어 있다. 심지어는 미국 인디언 십분의 일에 달하는 출생아에게서도‘몽고반점’은 나타난다. 이 정도 되면 몽골의 침략에 따른 우성형질과는 하등 상관관계가 없다고 해도 될 듯싶다.
'몽고반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13세기부터 서양인들에게는 몽골인이 동양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유럽 유수의 역사서에 빈번하게 등장하는‘몽골로이드’라는 단어도 이를 입증한다. 서구의 인식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인물은‘칭기즈칸’이니 그럴 만하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독일의 유명 록그룹의 이름도‘징기스칸’이었으니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 편견 가운데서도 몽골제국의‘징기스칸’은 강렬했나 보다.
우리의 윗세대에서는 아이를 낳을 때 삼신할머니가 아이의 엉덩이를 때려 세상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마치 멍이 든 것처럼‘몽고반점’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엄마의 몸을 떠난 신생아들의 출산 시의 울음도 엉덩이가 아파서라고 하니 이 대목에선 비과학적이지만 묘한 설득력이 있다. 하긴‘일광에 물들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전설이 된다’하니 수많은 역사의 시련과 시간을 지나오며‘몽고반점’에 얽힌 이야기들도 그렇게 진화되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유독 생명의 탄생에는 설화가 득세한다. 존재에 대한 신비는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와 달리 서양인들은 몽고반점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때문에 서구권의 동양인 이민자들 아이들의‘몽고반점’을 보고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의학적 규명 없는 인체의 신비에 대한 웃지 못할 풍경이다. 그러고 보니‘몽고반점’의 생성 이유에 대해 딱히 학교 교육과정에서 배운 적도 없는 듯하다. 침략자 몽골에 맞선 삼별초 항쟁의 역사의식이 너무 강고해서였을까.
난무하는 몽고반점에 대한 속설에 또 다른 속설을 근거 없이 유포해도 딱히 욕먹을 일은 아닐 듯싶다. 모든 전설은 순수를 근거로 확장되니까. 몽고반점은 싹이 나 녹색으로 변한 감자의 환생이다. 감자는 종족보존을 위한 방어기제인 솔라닌이 나오면서 푸른색을 띠게 된다, 이런 독성작용은 푸른 착색 현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사실 푸른빛이 도는 감자는 식용으로 쓰기에는 용도폐기다. 제때 선택받지 못하고 새싹이 돋으면서 푸른 색깔과 독성만이 강해져 수명을 다한 감자가 새 삶을 살고 싶어 신생아의‘몽고반점’으로 환생하는 것은 아닐까. 쓰고 보니 제법 그럴듯하다. 의학적 근거도 역사적 토대도 없는‘몽고반점’, 이제‘감자반점’이라 호칭하면 너무 생뚱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