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학제 진료를 보는 의사들이 ‘원격 협진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력 수와 참여 과가 늘어남에 따라 효율적인 참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21일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영상의학회 학술대회(KCR 2022) 암다학제 심포지움에서는 종양·방사선·영상의학과 다학제팀 전문가들이 모여 임상현장에서 느끼는 암 다학제 진료 한계와 향후 개선점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다학제 통합진료란 암 환자 진단 및 치료에 관련된 3~9인의 여러 분야 전문의가 한 팀을 이뤄 최선의 치료방법을 찾아내는 시스템을 말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대장암, 위암,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2014년부터 ‘다학제 통합진료’ 수가 산정 및 진찰료를 인정했다.
심평원에서 공개한 2019~2021년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다학제 진료 실시 현황을 살펴보면, 환자수는 1만5117명, 1만4522명, 1만6705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참여의사별로도 5인, 6인 팀이 매년 많아지고 9인 이상 다학제 진료 사례도 2019년 3건, 2020년 1건에 비해 2021년 26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발제를 맡은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부교수는 “진단된 암에 대해 다각적인 분야에서 환자의 최적 진료를 제공하고, 환자는 한 자리에서 모든 궁금증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최근 고령화, 복잡한 암 질환 증가로 다학제 진료의 수요가 높아졌고, 참여하는 의사 인원이나 진료과 종류도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의사는 부족한데, 의사 개인별로 주어진 업무량도 많아 협진을 참여할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다학제 진료팀은 의사마다 자신의 진료·수술·진단 외에 시간을 내 따로 모여야 한다. 환자는 많고 시간은 없다보니 점심시간을 쪼개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며 “그마저도 시간이 나지 않으면 환자와 함께 자리하는 시간이 연기되고, 진료도 수월하게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병원의 각 과별 평균 의사 수는 1~2명에 그친다. 다학제 진료는 여러 의사들의 의견을 한 번에 모아 진단과 치료를 빠르게 결정하고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상설 인력이나 대면진료 지원이 없으니 오히려 제때 진행하기 힘든 경우도 생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다학제 진료는 환자와 함께 각 분야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행해야 하는 ‘대면진료’로만 수가나 진료료 산정이 인정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다학제 진료에 있어 ‘원격 협진 및 진료’가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5~9명의 의사가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우니, 병원 내 인프라넷을 이용한 ‘화상 진료’ 만이라도 허용해 달라는 의견이다.
황인규 대한종양내과학회 총무이사(중앙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서울 빅5병원도, 지방 병원도 마찬가지다. 핵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영상의학과는 교수 자체도 많지 않아 다학제 협진 참여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전공의도, 전문의도 부족한 만큼 대면 협진을 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며 “병원에서 갖추고 있는 인트라넷 화상 프로그램을 이용해 협진 할 수 있는 방안이 고려되길 절실히 바라고 있다”고 언급했다.
손석현 대한방사선종양학회 보험이사(서울성모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도 “현재 4개 다학제 협진팀에 있으면서 일주일 6번 회의를 갖는다. 일주일 절반 이상, 하루 종일 회의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라며 “다학제가 왜 반드시 대면에 목적을 둬야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의료진 사이에 소통이 잘 이뤄져 올바른 방향으로 치료만 가능하면 될텐데, 무조건 환자를 앉혀놓고 모두가 모여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효율적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면이 반드시 필요한 환자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다. 특정 환자 경우 대면이 필요하지 않다면 화상을 통한 회의 결과물에 대해 의무기록을 인정해주고, 앞으로 진행 될 적정성 평가 반영 비율에도 포함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화상진료뿐만 아니라 디지털 병리 필요성도 제기됐다. 암 진단에 있어 병리 검사 결과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대부분 병원이 유리 슬라이드를 이용하고 있어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2차적 가공 시간 필요하다. 예전 기록을 찾기 위해서는 반나절 이상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장기택 대한병리학회 총무이사(삼성서울병원 병리과 교수)는 “다학제 화상 협진, 화상 진료 도입 필요성은 분명하다. 다만 수가를 인정했는데 참여만 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가 생길 것을 유의해 초기 방안을 잘 만들어가야 한다”면서 “또한 병리 이미지를 자동으로 호환하고 저장하는 디지털 병리 시스템을 함께 갖고 가야 한다. 시간 효율적 면에서, 협진 시스템 체계화나 환자 이해도를 높이는 데도 확실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날 함께 참여한 최금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사무지원부 부장은 다학제 진료에 있어 원격 시스템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현재 법 상 즉각 논의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그는 “다학제 진료 비대면 협진 필요성에 대한 의견은 계속 제기돼 왔다. 현재 의료진간 원격협진·진료는 이제야 본 사업에 들어섰고, 응급의료 법률에 기반 해 대상자가 한정돼 있다”며 “보안 이슈도 중요하다. 사업도 정부에서 제공된 시스템으로만 적용이 가능한 상황이다. 법, 보안 사항이 확정돼야 다학제 비대면 협진 및 진료도 논의될 수 있다. 수가도 앞선 두 과제가 해결돼야 협의 가능하다”고 정리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