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연금개혁을 두고 여야가 충돌했다. 여당은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손가락 하나 안 대고 연금개혁을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야당은 “윤석열 정부가 연금개혁을 잘 추진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대응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에서는 11일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이날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민연금 개혁 방안은 소득재분배보다 소득비례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국민연금 지급보장을 법적으로 명문화하는 방안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이사장은 “지급보장이 미래 세대 불안과 우려를 불식하고 연금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관계에 대해서는 “기초연금으로 인해서 국민연금 가입요건이 약화되는 것은 국민연금 이사장 입장에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관계 설정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3월까지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마친 뒤 10월까지 연금개혁 방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앞서 지난 2018년 진행된 4차 재정계산에서는 국민연금이 현행 틀을 유지할 경우 연금기금이 오는 2057년 바닥날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기금 고갈 시기가 더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보험료율 인상, 수급연령 인상만으로는 부족하고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 특수직역연금, 퇴직연금까지 총망라한 구조개혁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의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 방향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되나’라는 질문에 김 이사장은 “노후 소득 보장을 강화하면서도 재정건전성을 확보한다는 전제하에서 세대별 형평성을 고려하면서 해야 한다”고 답했다.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이 아니라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을 개혁 방향으로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데 사용자, 고용주 저항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묻는 신 의원 말에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해당사자가 각자 조금씩 양보하며 부담률을 높여가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에서 근무하면서 공무원 연금을 받고,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김 이사장과 조 장관 모두 기득권, 공무원 연금 수혜자다. 국민 공감을 얻고 연금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 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새 정부 들어서 연금개혁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는 연금과 관계없는 분들이 추천되기도 했다”며 “국회 연금특위가 있지만 공전하고 있고, 윤석열 정부의 방향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10여 년 이전부터 중장기적으로 국민연금 재정 운영구조가 불안정하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는 손가락 하나 안 대고 연금개혁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미애 의원 역시 “지난 정부는 연금개혁이 없던 유일한 정부”라며 “그 이전 정부도 폭탄 돌리기처럼 미뤄왔지만 최절정은 문재인 정부”라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의 기금 투자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전체 사망자 85% 이상이 옥시 제품을 이용했다. 옥시는 1000명이 넘는 국민 생명을 앗아갔고 그 피해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면서 “국민연금은 옥시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에 대한 투자를 계속 늘려왔다”고 비판했다.
강 의원은 “국민 건강을 침해하고 1000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간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를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질문했고 김 이사장은 “일반적으로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이사장의 답변 태도에 대한 민주당 지적도 있었다. 김 의원이 국민연금 재정추계 전문위원회 구성을 묻는 과정에서 김 이사장은 “제가 그 당시 있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김 의원은 이어서 “지난해 국감에서 국민연금은 제5차 재정계산 시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5차 재정추계위원회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은 무엇인가. 또 재정추계 전문위원회 구성이 적절하다고 보나”라며 “과거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물었다. 김 이사장은 “과거에 있지 않았다”며 잘 모른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이에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김 의원 질의 중 김 이사장이 ‘제가 그때 있지 않아서’라는 말을 2번 했다. 국정감사는 본인이 기관 취임했을 때부터 하는 게 아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면서 “올해 국회에 연금특위도 만들어지고 대통령 공약이라면 소위든 특위 등 구성을 좀 알고 와야하는 것 아닌가. ‘제가 그때 있지 않아서’라는 말이 어떻게 나오나”라고 목소리 높였다.
정춘숙 복지위 위원장 역시 “‘보고받지 않아서’ 이런 답변도 마땅하지 않다. 다 보고 받았어야 맞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죄송하다”며 “유의하겠다”고 답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