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5시 진보성향 단체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 주최로 서울 중구 시청역 7번 출구 인근에서 집회가 열렸다. 중구 태평로 교차로부터 숭례문 교차로까지 세종대로 10차선 중 8차선이 시민들로 메워졌다. 7번 출구 앞 한화금융플라자부터 흥국생명빌딩까지 약 350m다. 8차선 도로뿐만 아니라 인도에도 시민들이 늘어섰다. 이날 주최 측은 집회 참가자를 5만명으로 추산했다.
추워진 날씨 탓에 참가자들은 두꺼운 패딩과 목도리 등으로 무장했다. 켜둔 촛불에 손을 녹이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참여한 시민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친구와 함께 집회에 참가한 20대 청년부터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온 40대 부부, 홀로 참가했다는 80대 노인 등이 한마음으로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추모시 낭송이 시작되자 일부 시민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아이처럼 엉엉 오열하는 중년 남성도 있었다. 참가자들이 든 피켓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라’, ‘윤석열은 퇴진하라’, ‘퇴진이 평화다’ 등의 문구가 적혔다.
촛불행동은 지난 9월부터 매주 토요일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를 진행해왔다. 이번 주말에는 윤 대통령 퇴진 대신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집회로 성격을 바꿨다. 이날 집회 연단 뒤에는 ‘무책임한 정부가 참사를 불렀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다만 이날 집회 중간중간 “윤석열 오세훈 퇴진하라” “내려와라” 등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욕설도 들렸다.
참가자들은 연단에 오른 이들의 추모사를 들으며 슬픔에 젖고 때로 분노했다. 이태원 참사 목격자 김운기씨는 “참사 당일 이태원에 들렀다가 현장을 목격했다. 너무나 안타깝고 끔찍한 광경이었다”면서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자 노력했다. 다 같이 길을 트고 서로를 도왔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언제든 타인을 도울 수 있고 위대한 일을 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발언에 현장에서는 박수가 울려 퍼졌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장훈 4·16 안전사회연구소장은 “세월호 참사 후 9년, 피눈물 나게 노력했지만 핼러윈 저녁 수많은 젊은이를 또 지켜내지 못했다”며 “희생자의 빈소에 국화꽃을 들고 조문했지만 꽃잎조차 무거울까 봐 올려두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참사 유가족이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아시냐. 아이가 없는 빈방, 아이가 없는 아침, 아이가 없는 삶은 지옥보다 더 끔찍하다”면서 “유가족에게 애도는 내 가족이 왜 죽었는지 알고 가해자가 모두 처벌받은 후에야 시작될 수 있다”고 울먹였다.
20대 여성 용수빈씨도 “세월호로 친구들을 잃고 너무나 아팠는데 또 다시 이태원 참사로 또래를 잃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롭고 슬프다”며 “무능하고 무지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이대로 두면 안 된다. 이런 사고는 또 일어날 것이고 그때는 내가 죽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촛불행동은 이날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3가지를 요구했다. △원인 분석과 책임 규명 △책임자 처벌 △개선 대책 마련이다.
집회 참가자들은 진상규명과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고양에 거주하는 김모(50·여)씨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이 문제가 됐지만 이번에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마저 없었다”며 “일을 만든 사람이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퇴진 촛불 집회 후 6년 만에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연배(47)씨는 “청년들이 너무나 어이없게 죽었다. 참사 당시 나라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관리·감독이 있었다면) 청년들이 질서에 따라 행동할 수 있었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씨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아내 김선희(45·여)씨도 “참사 당일 왜 기동대가 나오지 않았는지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29일 오후 10시15분 이태원 해밀턴호텔 인근 좁은 내리막길에 인파가 몰리면서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사망자 156명, 중상자 29명, 경상자 122명 등 총 307명이다. 피해자 대다수는 20대였다. 참사 당시 좁은 골목길에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들어찼다. 사람들이 5~6겹으로 넘어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쿠키뉴스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슬퍼합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이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민수미,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