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의 비급여 공개 목록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에 의료계 반발이 거세다. 환자의 알 권리 보장과 개인정보 침해 주장 사이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는 찬성쪽 의견에 무게를 기울였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개원의협의회 등 의사단체가 ‘비급여 보고제도’와 관련 단호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기본권을 침해로 헌법재판소에 구제신청(헌법소원)까지 진행한 상황이다.
비급여 보고제도는 모든 의료기관이 비급여 항목·기준·금액·진료내역 등을 주기적으로 보건복지부에 보고하는 제도다. 정부는 2020년 의료법 개정으로 의원급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564개 항목에서 올해 672개까지 공개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그러던 지난 15일 복지부는 비급여 보고제도의 세부 사항을 규정한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보고 및 공개에 관한 기준’ 고시를 행정 예고했다. 이는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하고 있는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대상 672개를 내년부터는 모든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보고하고, 2024년에는 전체 비급여 규모의 약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1212개 항목의 주요 비급여들을 보고하도록 한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모든 의료기관에서 쓰이는 비급여 목록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현황을 파악한다는 데 있다. 기존에는 심평원 홈페이지를 통해 비급여 항목별 가격 정보만을 제공해, 환자가 특정 질환이나 수술·시술에 대한 총진료비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행정예고안대로라면 내년부터는 전체적인 비급여 진료 과정의 큰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번 행정예고안은 가격뿐만 아니라 아닌 성별이나 생년과 같이 극히 사적인 기본정보와 질병, 치료 내역, 복용약 등 환자의 민감한 진료정보까지 보고함으로써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크다며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19일 성명서를 통해 “비급여 정책 관련 의료법에 대한 위헌 확인 소송이 진행 중임에도 정부가 비급여 고시를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비급여 진료비용의 보고 내역과 무관한 생년‧성별 등의 사항까지 공개하라는 것은 환자 개인의 정보를 보호하기는커녕 국가 정책의 명분으로 얼마든지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원개원의협의회 역시 “정부기관을 통한 공공연한 개인정보 유출이 문제가 되는 가운데,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해야 할 정부는 또 다른 위험 요소를 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행보는 과도한 직업수행자유 침해, 개인정보보호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개인정보의 자기 결정권 침해로 ‘빅브라더’를 꾀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외에도 비급여 항목을 공개함으로써 비급여 처방을 통제하고, 의료기관 간 가격 경쟁 및 환자 유인을 유도해 환자와의 신뢰를 깨트릴 것이라 진단했다. 이는 결국 의료서비스 질 저하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상 의료계는 시범사업 초기부터 이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해왔다.
반면, 정부측은 2년 시범사업 동안 의료계가 우려한 상당부분을 이번 행정예고안에 담았고,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도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비급여 보고는 생년과 성별 등 비급여 발생 추이와 맥락을 분석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보만 담도록 했다.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데이터는 받지 않는다. 또한 제출된 보고자료를 모두 공개한다기보다 통계 분석을 위한 활용을 주 목적으로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비급여 보고 항목은 의료계가 요구했던 672개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행정예고 의견 수렴기간 동안 의료계와 더 적극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민단체는 이번 비급여 보고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시범사업 동안 문제없이 진행돼 왔고 최근 비급여 항목 증가, 실손보험 인상 등으로 국민들도 의료비에 예민한 만큼 시의적절한 제도라고 판단했다.
나백주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미 2년 전부터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었고, 이번엔 그 범위를 확대해서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조사분석이 끝나고 법적 근거 취지에 맞게 진행되는 제도인 만큼 개인정보 유출 위험은 적을 것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급여 정보는 일찍이 생년, 이름, 주소까지 보고되고 있으니 비급여라고 특별하지 않다고 본다. 민간보험에 유출될 우려가 있다면 모를까 비급여 항목을 공개하고 국민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 내에서 비급여 부분이 커지고 있고, 실손보험도 인상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대체 자신의 의료비가 어디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이번 비급여 보고제도를 통해 국민이 의료비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