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4시간, 8만6400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어떤 이들의 시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시간빈곤자 이야기다. 일주일 168시간 중 개인 관리와 가사, 보육 등 가계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이 주당 근로시간보다 적으면 시간빈곤자가 된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다양한 시간빈곤자 중 한부모에 주목했다. 생업과 양육, 가사를 모두 짊어진 한부모는 시간을 쪼개가며 1인 3역을 하고 있다. 찰나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 시간빈곤에 빠진 한부모의 목소리를 다섯 편의 기사에 담았다. [편집자주]
한부모 김슬아(여·36·가명)씨는 매일 점심시간도 없이 일한다. 9시간을 꼬박 움직여 손에 쥐는 월급은 200만원.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사는 그의 유일한 벌이다. 한 달 생활도 빠듯하다. 경제 지원은 없다. 김씨는 매년 한부모가정 지원정책 수혜 대상에서 탈락했다. 소득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어린 아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울 수 있을까. 김씨는 매일 밤 불안하다.
2020년 기준 국내 한부모가정은 약 153만3000가구. 이들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다. 한부모가족지원법이 만들어진 지 십여 년이 흘렀지만,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전문가 의견과 해외 지원 사례를 참조해 대책을 살폈다.
현행 한부모가정 지원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 기준 중위소득 58% 이하로, 2인 가구 월 소득인 약 189만원을 넘기면 생계급여를 지원받지 못한다. 기준 중위소득 60%를 넘기면 법정 한부모 자격을 잃는다. 중고차 한 대 갖는 것도 어렵다. 배기량 2000cc 미만, 차량 가액 500만원 이하, 연식 10년 이상 등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 기준을 벗어나면 가액의 100%까지 소득으로 인정돼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홀로 짊어져야 하는 가사와 육아는 부담이다. 현재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한부모가정에 가사지원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소수만 혜택을 받는다. 지원책이 없는 지자체도 많다. 정부의 아이돌봄서비스 역시 대기가 너무 길고, 시간제 서비스는 활용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더 큰 문제는 대다수 한부모가 시간이 없어 지원 정보를 알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도움을 요청할 인적 네트워크도 쌓기 힘들다. 한 30대 한부모는 “기댈 곳 없는 한부모 가장들이 정보와 정서적 위안을 얻을 발판이 필요하다. 정부가 이런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해외 주요국들은 한부모가정의 고용안정과 자녀돌봄 권리를 보장한다. 캐나다는 한부모 재교육을 위한 학비와 교통비, 재교육을 받을 동안 자녀 돌봄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다. 네덜란드는 한부모가 질병·임신·출산 등과 같은 문제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임금의 15%를 공제해준다. 아이슬란드와 독일, 노르웨이, 오스트리아는 한부모에게 유급휴가를 두 배 혹은 그 이상으로 준다. 미국과 영국은 자녀가 만 2세가 될 때까지 한부모 가정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자녀의 발육상태를 살피고 정서적 안정, 학업, 교육훈련, 취업 정보 등을 지원한다.
국내 한부모의 자립기반이 마련되려면 어떤 점들이 개선되어야 할까. 노경혜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현행 경제적 지원정책이 저소득 한부모에게만 몰려있어, 복지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중위소득 중심의 현행 복지급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지원조건을 ‘한부모 누구나’로 완화하거나 별도 혜택을 주는 등 보편적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부모가 떠안는 양육과 가사 부담을 줄일 대책은 없을까. 신영미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인구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한부모가족 생활주기별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녀의 연령에 맞춘 지원 설계와 일자리 방안 등이 설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적성개발·교육 훈련비 지원 △가족친화제도 한부모 근로 여건 조성 △고용 안정성 및 일자리 질 확보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이영호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장은 가사지원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내놨다. 광역시 이상 지역에는 반드시 한부모가족지원 관련 조례에 가사지원 조항을 넣자는 제언이다. 아울러 의지만 있다면 구·군 단위에서라도 충분히 서비스를 시행할 수 있다고 독려했다.
취약한 정보 접근성을 보완하기 위해 가정방문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허민숙 보건복지여성팀 국회입법조사관은 “미취학 자녀가 있는 한부모 가정은 시간이 없어 정보 접근성에 매우 취약하다”면서 “이런 경우 가정방문서비스가 정보 공백을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제도개선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한부모 당사자인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현행법에 한부모 고용 촉진을 위한 규정은 마련돼있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라며 “한부모 우선 고용하는 사업장에 인센티브를 의무 제공하는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관련 단체들과 적극 소통하며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제도 마련에 앞장서겠다”라고 강조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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