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태풍과 폭우'이어 '역대급 및 최강 한파'...어휘 과소비

'역대급 태풍과 폭우'이어 '역대급 및 최강 한파'...어휘 과소비

[MZ세대를 위한 시사 漢字 이해] '역대급(歷代級)과 최강(最强)' 최상급 표현의 의도
역대급=역사상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무엇?

기사승인 2023-01-25 07:00:02
《설 명절 연휴 마지막날인 24일 화요일 오후. 서울 지역 체감온도 영하 26도를 웃도는 역대급(歷代級) 한파에도 서울 도심 곳곳은 연휴 마지막 날을 즐기려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이날 오후 1시45분께 찾은 서울특별시청 앞 스케이트장에는 3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스케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스케이트장 안에 들어간 시민들은 무릎까지 오는 롱패딩으로 중무장을 하고 귀마개와 목워머, 모자 등으로 대비를 철저히 한 모습이었다. (이하 생략·출처 뉴스1)》

《이번 설 연휴는 날씨 때문에 고향 오가는 길이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설 당일에는 전국에 눈이나 비가 내리고, 연휴 막바지에는 이번 겨울 최강(最强) 한파가 예고됐습니다. 귀경길, 항공편, 배편의 무더기 결항도 우려됩니다. 이정훈 기상전문기자입니다. (이하 생략·출처 KBS)》
지난여름은  '역대급 폭우' '역대급 태풍'이었고 이번 겨울은 '역대급 한파' '최강 한파'라고 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 모른다. 이미지=픽사베이

□ ‘역대급(歷代級)’ 표준 국어대사전에도 없는 말, ‘최강(最强) 한파’ 어색한 신조어

춥습니다. 미디어는 날씨와 관련한 뉴스를 신속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뉴스는 ‘사실(fact)’이 중요하니까 이번 한파를 보도하는 데 있어 ‘영하의 온도 수치’를 반드시 입말이나 글말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온도를 수식하는 데 있어 언어의 과소비 심합니다. ‘역대급’ ‘최강’ 등 자극적 언어를 스스럼없이 씁니다. 지난여름은 ‘역대급 폭우와 태풍’이었죠.

지난해 9월 5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북상 중인 제11호 태풍 ‘힌남노’와 관련해 “이번 태풍이 경험해보지 못한 역대급 태풍이 될 수도 있다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다”며 “국민 여러분께서도 태풍으로부터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었죠.

역대(歷代)란 ‘대대로 내려온 여러 대’ 또는 ‘그 동안’입니다. 여기에 ‘그에 준한다’는 접미사 '급(級)'을 붙인 거죠.

한 총리의 말을 풀자면 “역사상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강력한 태풍”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때 우리는 역사상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태풍을 만났던 걸까요? 아니었잖아요?

그리고 겨울이 되니 ‘역대급 및 최강 한파’입니다. 이 자극적 표현을 접하다보니 올겨울에 우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대로 얼어버리겠어요. ‘공포’를 느끼라는 건가요?

최강(最强)은 ‘가장 강함 또는 그런 것’이라고 하죠. ‘춥다’를 강조하려다 보니 이와 같은 최상급 어휘를 돌려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異常) 한파’ ‘강추위’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겠죠? ‘최강’은 주로 스포츠 경기에 쓰는 단어였습니다.

언론이 ‘기록적인 추위’를 강조하려다 보니 ‘최강 한파’ ‘역대급 한파’이란 말이 신조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상태’를 객관적이고 균형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자극적’ 언어를 남발해 독자의 가치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겁니다. 비단 날씨 보도만이 아니죠.

사실 독자들은 언론이 왜 자극적 언어를 쓰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경제적, 정치적 ‘판단’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걸 이제는 알죠.

1937년 조선어학회가 우리말 ‘큰사전’을 발간하고 머리말에 이런 얘길 씁니다.

‘우리말은 곧 우리 겨레가 가진 정신적 및 물질적 재산의 총목록이라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이 말을 떠나서는 하루 한때라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조선어학회가 ‘큰사전’을 낼 당시 우리는 우리말 사전조차 없었습니다. 프랑스, 미국, 영국 사람이 와서 프랑스어와 영어로 조선어 사전을 만들고, 이어 일본이 일본어로 조선어 사전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만든 것이요, 우리의 소용으로 된 것은 아니었다’라고 했습니다.

‘역대급’과 같이 우리말의 비문(非文) 상태가 심각합니다. 심지어 문화체육관광부조차 영어 등을 한글로 써서 ‘단어 투척’해 놓은 듯한 자료를 내놓곤 하니까요. 그러니 영상 자막등도 원칙과 표준이 없습니다.

 ‘역대급’을 능가하는 최상급 표현은 뭐가 있을까요? 곧 나올 것 같습니다.

 전정희 편집위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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