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치인이 고시원을 방문했다. 사람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좁은 방. 그는 이런 곳에 사람이 사느냐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법에서 정한 최저 주거기준은 14㎡(4.2평). 좁디좁은 공간에 부엌, 침실, 화장실이 꽉꽉 눌러 담겨 있다.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대다수는 청년이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1월 한 달 동안 서울 곳곳 좁은 청년의 방을 찾아 문제점을 살폈다. 인터랙티브 페이지에서는 청년의 방을 생생히 담은 360도 카메라와 영상을 볼 수 있다. [편집자주]
집은 곧 그 사람의 세계라고 했다.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고, 꼭 필요한 가구들이 그 자리에 있는 공간. 취업준비생 차종관(29)씨가 바라던 세계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의 집은 서울 관악구 신대방역 인근 한 빌라 반지하에 있다. 1층 현관에서 14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나오는 4개의 문. 이 중 하나의 문고리를 돌리면 14.8㎡(4.5평) 차씨 세계가 있다.
차씨는 6개월 전 이 집을 처음 봤다. 옷과 이불을 다 넣지 못하는 작은 붙박이장, 가슴 높이의 냉장고, 옴짝달싹할 수 없이 서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부엌이 그보다 먼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사하면서 책상, 접이식 매트리스, 수납장 등 상대적으로 부피가 있는 가구들을 채웠다. 여기에 의자, 상, 이불 등 필요한 각종 집기를 넣었다. 이사 같기도, 열과 행을 맞춰 블록을 쌓는 테트리스 게임 같기도 했다.
그가 서울에 올라와 원룸을 구한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전에는 차씨를 포함해 세 명이 16.5㎡(5평)에, 네 명이 23.1㎡(7평)에, 두 명이 19.8㎡(6평)에 살았다. 그동안 차씨에겐 단 9.9㎡(3평)의 개인공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넉넉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 14㎡(4.2평). 도시의 주택들은 이 기준이 맞춰 지어졌다. 집 하나를 쪼개 원룸 두세 개를 만들었다. 그곳에 돈 없는 청년들이 들어가 산다.
“이사하기 전까지 집만 50개 정도 봤어요. 서울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부터 대림역까지 5.7km 거리에 있는 집 전부를 훑었어요. 사람이 살만한 집은 없었어요. 창이 벽 위에 살짝 걸쳐있어서 빛이 새어 들어오는 방도 있었고, 방과 화장실 사이 주차장이 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9.9㎡(3평)짜리 작은 방은 너무나 많고요.”
그렇게 지금 사는 반지하에 왔다. 운이 좋았다. 신축이었고, 보증금도 쌌다. 대출을 받아 5000만원에 계약했다. 2층, 3층에 있는 집들은 1억3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이다. 차씨 방과 같은 크기다.
타협 아니면 포기, 그들이 생존하는 방법
부엌은 직장인 강주연(31·여·가명)씨 혼자 서있어도 꽉 찬다. 관악구 신림동 한 다세대주택 18.5㎡(5.6평) 원룸. 작은 집에서 한 가지 기능만 하는 공간은 존재하기 어렵다. 강씨 한 팔 길이 정도 되는 부엌에 개수대, 인덕션, 후드 시설, 세탁기, 상·하부장이 들어차 있다. 주방 도구를 두어야 할 자리에는 세탁 세제들이 함께 있다. 물건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건 수납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인덕션은 2구짜리지만, 작은 크기 탓에 프라이팬과 냄비를 동시에 올리기 힘들다. 식사 시간엔 찌개든 반찬이든 둘 중 하나는 늘 식어있다.
강씨의 집에는 일종의 총량 법칙이 있다. 새 물건이 하나 들어오면 기존 물건 하나를 버려야 한다. 사야 하는 것이 생기면 강씨는 언제나 뺄 것부터 생각했다. “지금 전자레인지를 둘 곳이 없거든요. 밥을 만들 만한 주방이 아니라서 레토르트 식품이라도 먹으려면 전자레인지가 있어야 하는데 자리가 마땅치 않죠.” 고민을 거듭하던 강씨는 최근 이동식 옷걸이를 내다 버렸다. 이 공간에 작은 선반을 두고 위에 전자레인지를 놓을 예정이다.
사느냐 죽느냐 까진 아니지만 대학생 김연준(25)씨의 고민도 햄릿만큼이나 치열했다. 방에 침대를 두느냐 마느냐. 난제였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18.5㎡(5.6평) 오피스텔에 1인용 침대를 둔다는 건 방을 고시원 크기로 만든다는 말과 같았다. “침대를 두면 아주 좁은 복도가 생기거든요. 그 길로만 걸어서 생활해야 하는 거죠. 책상 의자도 뒤로 빼기 힘들고요. 접었다 펼 수 있는 조그만 매트리스로 타협했어요. 침대가 그리워요. 등이 좀 배기더라고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자주 했던 문걸이 철봉도 이 집에선 쓸모가 없다. 문이라곤 현관과 화장실뿐이어서 철봉을 달기에 마땅치 않다. 화장실은 매일 아침 전쟁터다. 샤워를 하다 물을 조금만 세게 틀면 모든 것이 젖는다. 수건, 휴지, 변기, 수납함까지. 물줄기 세기를 줄여 몸에 갖다 댄다. 김씨는 이제 안다. 이곳의 계약 조건엔 타협과 포기도 들어있다는 것을. 현행 1인 최저기준면적(14㎡·4.2평)은 이 집보다 작다는 말을 듣자 김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무너진 주거 사다리…갈 곳 없는 청춘
“사실 얼마나 걸려야 이 방을 벗어날 수 있는 건지 가늠이 잘 안 돼요. 그게 가장 슬퍼요.”
질문에 답하던 대학생 이은서(23·여)씨의 표정이 복잡했다. 그의 집은 서울 노원구에 있는 한 빌라. 14.8㎡(4.5평) 크기 원룸이다.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묻자 김씨의 미간이 좁아졌다. “목돈을 모으려면 취업해서 버는 돈 대부분을 저축해야 할 텐데, 일단 취업 자체가 불확실하고 얼마를 벌지도 모르잖아요.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니까 여길 벗어나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힘들어요”
청춘의 아픔은 곧잘 미화된다. 젊었을 때 고생하면 집을 살 수 있다는 말은 이제 판타지에 가깝다. 이씨 친구들의 생각도 같다. “얘도 쟤도 16.5㎡(5평)에 살잖아요. 보편적인 기준이 된 거예요. 이게 지금의 청년에게 주어진 현실이거든요.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사는 거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죠. 오히려 이상을 꿈꾸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니까요”
궁궐 같은 집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붙박이장 하나 정도 더 들어갈 수 있는 공간. 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주방. 침실과 거실 사이 벽. 1시간 동안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를 계속 듣고 있지 않아도 되는 환경. 그가 원하는 건 이게 전부다. “지금 집에서 6.6㎡(2평)만 커져도 제 삶이 좋아질 것 같아요. 청년들이 많은 걸 바라는 건가요” 이씨가 우리에게 물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