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 소설 ‘사하촌’ (4회)
…그러는 일편 중들은 제 논물이 밑에 논에 넘어나가지 못하게 도두어둔 물귀와 논두렁 낮은 짬을 한창 더 단단케 단속하느라고 이리저리 바쁘다.
고 서방은 분도 분이지만 그보다 내년 봄에 별말 없이 그 절논 두 마지기가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앞으로 살아갈 일이 꿈 같이 암담하였다. 아무리 흠이 없어도 물길 좋은 논은 살림하는 중들에게 모조리 떼여가는 이즈음에 아무리 독농가로 신임을 받아오든 고 서방도 오늘 저지른 일로 보아서 논은 빼앗긴 논이라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문득 지난봄의 허 서방이 생각났다.
그는 부쳐오던 절논을 무고히 떼이고 살길이 막혀서 소나무가지에 목을 매여 시퍼런 혀를 한 자가 빼물고 느러져 죽어버렸다.
곰보는 몸서리를 쳤다. 이왕 못살 판이면 처자야 어떻게 되든지 자기고 그렇게 죽어버릴까, 논두렁이 몇 천 길이나 땅 속으로 꽝 둘러꺼졌으면 싶었다. (이하 생략·출처 조선일보)
□ 해설
소설가 요산 김정한(1908~1996)은 경남 동래군 북면 남산리 출생이다. 지금의 부산 범어사 인근이다. 그는 범어사 경내에 있던 명정학교(현 금정중학교)를 나와 서울 중앙고보를 거쳐 부산 동래고보로 전학했다. 그 동래고보를 다니면서 동맹휴업을 하다가 경찰에 잡혀 가기도 했다.
그는 졸업 후 공립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일본 와세다대학 제1고등학원 문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공부를 했다.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사하촌’이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그해 이 소설이 신문에 연재됐다.
소설 ‘사하촌’, 즉 절 아래 절 소유의 농토를 부쳐 먹고 사는 동네를 뜻하는 ‘사하촌’은 소작인들의 비참한 삶과 친일 승려들의 잔혹함을 담았다. 이 때문에 요산은 불교계의 미움을 샀다. 나아가 요산은 ‘사하촌’ 발표 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테러를 당해 두 달간 거동을 할 수 없었다.
‘사하촌’의 하이라이트는 가뭄에 시달리는 소작인들이 지주인 승려들에게 물길을 나눠 쓸 것을 요구하나 돌아오는 건 주재소 고발을 통한 연행뿐이다. 앞서 많은 소작인들이 불심에 그 논을 시주했으나 결국 그 논을 부쳐 먹는 소작인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한편 요산은 실천적 문학인으로 항일 활동과 반독재투쟁을 했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과 그 후신 민족문학작가회의 초대 의장을 맡는 등 문학계의 큰 어른이기도 했다.
최근 명찰 ‘해인사’에서 승려들 간의 ‘종단 권력 싸움’이 이판사판 진흙 밭이다. 1930년대 ‘사하촌’의 현대판이라고 해야 될 것 같다.
이미 기독교가 ‘X독교’라는 오명으로 불리면서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회의가 점점 깊어지고 있는 마당에 유명 사찰의 탐욕스런 민낯은 우리를 아연케 한다.
제 아무리 물질문명이 발달해도 사람은 연약한 존재인지라 종교심으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선함과 구원을 찾는데 영성 가득해야할 종교지도자들이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면야 누구에게 지혜를 구할까.
마치 영화 ‘밀양’에서 절대자에게 배신당하는 듯한 절망감을 갖는 이신애(전도연 분)의 심정이 요즘 종교를 대하는 보통 사람들의 심정이라는 걸 종교지도자들이 알까 모르겠다. ‘물질을 과다 소유한 종교’는 괴물로 변하기 쉬운 악의 모체, 매트릭스와 같다.
전정희 편집위원 lakaj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