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저쪽 좀 봐!” “대~박” 조용하던 공연장이 일순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지난 25일 뮤지컬 ‘캣츠’ 내한 공연이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사이 쉬는 시간(인터미션)에도 관객들은 극장을 떠나지 못했다. 객석을 휘젓는 고양이들 때문이다. 객석 왼편에선 당당한 샴 고양이 카산드라가 관객의 털모자를 낚아채며 익살을 떨었다. 반대편에서 등장한 사회자 고양이 멍커스트랩은 가슴을 부풀리며 위엄을 뽐냈다.
진짜 고양이가 난입한 게 아니다. ‘캣츠’에서 각양각색 고양이로 변신한 배우들은 객석을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관객과 경계를 허문다. 2017년 내한 공연 이후 5년 만에 부활한 오리지널 연출이다. 2020년 내한 당시엔 배우들이 객석으로 내려오는 동선을 2~3회로 최소화했다. 배우들은 고양이 분장이 새겨진 마스크를 쓴 상태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는 조처였다. 당시 공연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세계 유일한 오리지널 투어 공연으로 주목받았다.
관객들과 거리가 좁혀지자 배우들은 신난 눈치였다. 가운데 통로를 기어가던 곡예 고양이 빌 베일리는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관객을 바라봤다. 통로 좌석에 앉은 관객이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자, 기분 좋다는 듯 얼굴을 비비적댔다. 덕분에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1층 통로 좌석, 일명 젤리클석(젤리클은 ‘캣츠’에서 고양이를 부르는 이름)이 인기다. ‘캣츠’ 관계자는 “앞쪽 중앙 좌석 선호도가 높은 다른 공연과 달리, ‘캣츠’는 젤리클석이 가장 빨리 매진된다”며 “도둑고양이 커플인 몽고제리와 럼플티저가 객석에서도 늘 붙어 다니는 등 각 배역 특성을 녹여낸 소통 방식도 볼거리”라고 귀띔했다.
‘캣츠’는 1년에 한 번 벌어지는 고양이 축제 젤리클 볼을 그린다. 최고령이자 고양이들의 지도자인 올드 듀터러노미는 젤리클 볼에서 새로운 삶을 살 고양이를 선택한다. 극적인 갈등이나 사건은 없다.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시를 각색한 영향이다. 그렇다고 재미가 떨어지진 않는다. 각양각색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 덕분이다. 고양이들의 삶은 인간과 닮았다. 낯선 세상을 동경하고, 지나간 전성기에 회한에 젖다가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날을 꿈꾼다는 점이 그렇다.
발레, 현대무용, 탭댄스, 곡예 등 역동적인 안무가 시선을 끈다.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가 납치된 올드 튜터러노미를 구출하는 장면은 한 편의 마술쇼 같다. 천 아래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배우가 바뀐다. 또 다른 볼거리는 배우들의 몸짓 연기다. 고양이가 앞발을 오므렸다가 펴는 꾹꾹이, 침으로 몸을 닦는 그루밍 등 고양이들의 특성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캣츠’ 관계자는 “자신이 주인공이 아닐 때도 끊임없이 고양이를 연기하는 배우들 모습이 관전 포인트”라고 귀띔했다.
배우들은 한국 관객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마련했다. 올드 듀터러노미를 연기하는 배우 브래드 리틀은 인터미션 때 관객에게 큰절을 올린다. 호기심 많은 고양이 제마이마 역의 배우 가브리엘 파커는 대표곡 ‘메모리’(Memory) 일부를 한국어 가사로 부른다. 신사숙녀를 ‘신사숙냥’, 고양이 이름을 ‘나비’라고 번역한 대목도 재밌다. ‘캣츠’는 1981년 초연한 이후 30개 국가에서 15개 언어로 관객을 만났다. 누적 관객수만 7550만명에 달한다. 공연은 오는 3월1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어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