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시장 예상을 엎고 올해 시설투자(CAPEX) 규모를 전년 수준으로 유지한다. 반도체 경우 지난해 실적을 갉아먹은 주범이고 1분기에도 불황이 예고돼 있다. 그럼에도 버티기로 한 이유는 하반기 회복 기대감과 중장기 수요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DS부문 부사장은 31일 오전 4분기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올해 CAPEX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시황 약세가 당장의 실적에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미래를 철저히 대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해 필수 클린룸을 확보하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CAPEX 내 연구개발(R&D) 항목도 이전대비 증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CAPEX에 53조1000억원을 쏟아 부었다. 역대 최대 규모로 1년 전보다 약 10% 증가했다. 반도체 사업부인 DS(디바이스솔루션)에 47조9000억원, SDC(디스플레이)에 2조5000억원이 투입됐다. 사실상 반도체에 ‘올인’ 했다. 4분기 시설 투자는 20조2000억원이며 DS 18조8000억원, SDC 4000억원 수준이다.
메모리 시설 투자는 평택 3, 4기 인프라와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EUV(극자외선) 등 첨단 기술 적용 확대, 차세대 연구 개발 인프라 확보를 위한 투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파운드리는 평택 첨단 공정 생산 능력 확대와 미래 수요 대응을 위한 3나노 초기 생산 능력과 미국 테일러 공장 인프라 구축에 투자를 집중했다.
하지만 투자대비 실적이 양호하지 못하다.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은 70조4600억 원, 영업이익 4조3100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7.97%, 68.95% 줄었다. 분기 영업이익이 급감한 이유는 DS 부문 실적이 부진해서다. DS 분기 영업이익은 27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약 97% 급감했다.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고객사 재고조정이 지속됐고 이 탓에 수요가 약세를 보였다. 이런 추세라면 DS 적자 전환도 예상되는 대목이다. 삼성전자가 적자를 방어하기 위해 사전에 시설투자를 줄일 것이라는 전망이 증권가에 돌았다. 키움증권은 올해 삼성전자 CAPEX 전망치를 49조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김 부사장은 “D램 부품 공급 이슈는 점차 완화했지만 경기 불확실성에 따라 지속적인 고객사 재고조정 기조로 수요 성장이 제한됐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 역시 지난해 하반기 수요 감소로 불황에 직면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반도체 판매금액은 470억달러로 1년 전 대비 3% 하락했다. 또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반도체 매출은 6017억달러로 1년 전(5950억달러)보다 고작 1.1% 성장에 그쳤다. 메모리 경우 매출이 1년 전보다 12.6% 감소했다. 반도체 수요가 줄면서 D램 가격이 하락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해 3분기 D램 고정거래가격이 전 분기보다 10~15% 가량 하락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매출 감소 원인은 TV⋅스마트폰 등 세트 제품 출하량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물가상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금리인상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다.
스마트폰 사업부서인 MX 부문도 빛을 보지 못했다. 신모델 출시효과가 감소했고 무엇보다 중저가 스마트폰 수요가 부진했다. 삼성전자는 “시장과 인플레이션 및 국제정세 불안정 지속으로 스마트폰 수요 부진이 지속됐다. 다만 플래그십 제품은 시장 전망 하락폭 대비 선방했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에도 글로벌 IT 수요 부진과 반도체 시황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봤다. 메모리는 고객사 재고 조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신규 CPU 출시에 대비해 서버·PC용 DDR5 수요 대응을 위한 준비를 확대하면서 LPDDR5x 등 모바일 고용량 제품 수요에도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모바일 사업은 플래그십 제품 경쟁력 강화에 기술 역량을 집중해 폴더블 제품 고성장과 S23시리즈 판매 확대를 지속 추진할 방침이다. 또 중저가 시장에서 5G 스마트폰 판매를 확대해 시장 역성장을 극복하고 프리미엄 태블릿 라인업과 웨어러블 제품 경쟁력을 강화해 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다.
김 부사장은 “고객사 재고조정 기조 당분간 이어질 것이고 고객구매 심리 회복이 기대되지만 경기 상황이나 소비심리 개선은 추가 관찰이 필요하다”라며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라인 운용 최적화 진행하고 공정 안정화를 위한 연구개발과 필수 투자 비중을 늘려 기술과 시장 리더십 재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