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일은 10·29 참사가 벌어진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지난해 10월29일 핼러윈을 맞아 서울 이태원동으로 향했던 시민 159명이 당시 벌어진 압사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이태원 거리는 고요해졌다. 시민들 발걸음이 끊겨서다. 침묵이 내려앉은 이태원을 위해 상인들과 음악인들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이들은 4~5일 이태원 일대 클럽과 라운지에서 ‘렛 데어 비 러브, 이태원!’(LET THERE BE LOVE, ITAEWON!) 캠페인을 연다.
캠페인을 기획한 이는 10년 가까이 이태원에 거주하며 인근에서 재즈 바와 뮤직 펍을 운영하는 제이(Jay)씨. 그는 이태원 거주자 및 상인들과 함께 팀 이태원을 꾸려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제이씨는 1일 쿠키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2017년 영국 맨체스터 테러 참사 이후 많은 음악인이 모여 자선 콘서트를 개최했다”면서 “우리도 이태원을 불편한 장소로 보는 인식을 개선하고, 참사의 슬픔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자 ‘렛 데어 비 러브, 이태원!’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렛 데어 비 러브, 이태원!’은 지자체 지원 없이 100% 민간인의 힘으로 마련한 캠페인이다. 행사 프로그램은 음악 공연과 모금 행사, 예술작품 플리마켓(벼룩시장)으로 꾸려진다. 음악 공연은 오지은, 해리빅버튼, 이날치, 브로콜리너마저 등 뮤지션 100여팀이 채운다. 프로스트, 썰스데이 파티, 와이키키 등 이태원 일대 클럽 13곳이 업장을 무료로 개방한다. 비영리단체를 세우는 것부터 공연 장비 대관까지 쉬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캠페인 취지에 공감한 상인과 음악인이 많아 록 페스티벌 못지 않은 공연 라인업이 완성됐다. 팀 이태원은 캠페인 수익금 전액을 기부단체와 유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상인들에게 이태원은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참사 이후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1동은 물론, 녹사평역 등 인근 지역까지 방문객이 끊겨 상인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월세는 비싼데 손님은 없으니, 상인 대부분 매달 수천만원씩 쌓이는 적자를 견뎌야 한다고 제이씨는 말했다. 이태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이자 우리 사회 다양성을 떠받치는 근간이기도 하다. 일찍부터 이민자와 외국인이 모여 살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온 덕분이다. 여러 장르 독립 음악인과 퀴어 아티스트 등 비주류 예술인이 이태원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태원이 저주받은 공간으로 기억되는 것은 한국 사회 전체의 슬픔”(제이씨)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태원이 가진 문화적 역동성과 포용력을 유흥 혹은 밤 문화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팽배하다. 희생자를 향해 쏟아지는 모욕도 이런 편견에 뿌리를 뒀다. 밴드 해리빅버튼 멤버 이성수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참사 이후 이태원을 둘러싼 선입견이 퍼져 안타까웠다”며 “이태원은 여러 문화가 뒤섞여 역동적이고 활기찬 공간”이라고 짚었다. 제이씨도 “단순히 상권을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관광 명소이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장소로서 이태원을 부흥시키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10·29 참사 직후 국가애도기간 동안 대중문화 예술인들의 공연과 행사는 대부분 취소됐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태원에 사랑과 희망을 심어달라는 팀 이태원 요청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5일 무대에 오르는 싱어송라이터 겸 작가 오지은은 쿠키뉴스에 이렇게 말했다. “큰 슬픔 앞에서 또는 사회에 위기가 왔을 때 음악 공연이 간단히 취소되는 모습을 보며 직업인으로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양한 음악이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선곡에) 의도를 갖고 싶지 않다. 노래는 듣는 사람의 것이니, 나는 그저 부를 생각”이라고도 했다.
팀 이태원은 공연과 예술로 비극을 잊자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과 외면으로는 비극을 극복할 수 없음을 역설한다. 팀 이태원은 “음악과 예술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희망의 빛을 비출 수 있다”며 “돌아가신 분들을 마음 깊이 추모하며, 빛을 잃어가는 이태원에 예전처럼 다시 희망과 사랑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성수도 “10·29 참사는 지금도 믿기 어려운 비극이자 충격이다. 이번 캠페인이 희생자 유가족의 아픈 마음도 치유해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오지은은 “음악을 통해 관객 각자 감정이 증폭됐다가 승화되는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