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만 타면 속이 안 좋고 머리가 아파온다. 밥 먹고 바로 타는 날에는 증상이 더 심하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다. 목구멍을 막으며 창문을 열고 먼 산을 바라본다.
배 멀미도 심할까. 멀미약을 먹지 않고 탄 배에선 웬일인지 아무렇지 않다. 이송수단을 가려 느끼는 멀미, 이유가 무엇일까. 안중호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와 서지원 성균관의대 삼성창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를 찾아가 물어봤다.
Q.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 이동수단에 따라 멀미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나요?
안중호 교수 : 우리는 시각, 체성(후각, 청각, 촉각 등) 감각, 그리고 전정(움직임) 감각을 이용해서 몸의 균형과 중심을 잡습니다. 차나 배를 타면 평소와 다르게 몸이 계속 흔들거리는 반면, 눈이 보는 시각과 몸이 느끼는 체성 감각은 변화를 그다지 못 느낍니다.
그렇다 보니 세 가지 감각기관에서 신호를 전달받은 소뇌 입장에서는 ‘전정 감각만 왜 이렇게 난리인거야?’라고 느끼게 되고, 이러한 혼란이 심해지면 멀미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일정한 진동이 전달되는 경우보다 불규칙한 진동과 떨림이 지속되거나 심한 경우 멀미가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동수단마다 멀미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서지원 교수 : 차를 탈 때에는 가까운 풍경을 보거나 책, 휴대폰을 보기보다는 멀리 내다보면 시각의 변화가 줄어들기 때문에 멀미가 억제될 수 있으며, 앞자리에 앉으면 시야가 넓어 자동차의 움직임이 예측이 되고 뒷자리보다 차량의 진동도 적어 멀미가 덜할 수 있습니다.
배를 탔을 때에도 무게 중심에 가까운 배의 가운데에 있을수록 흔들림이 적어 멀미를 덜 할 수 있으며, 갑판 위나 위층 선실에 있으면 흔들림이 커져 멀미가 심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에서도 진동이 적고 창밖이 보이는 날개 근처 창가 자리에 앉으면 멀미 느낌을 줄일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보거나 듣는 것에 멀미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 교수 : 만약 1인칭 시점의 슈팅 게임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몸은 의자에 앉아 있는 채로 이동을 한다면 시각 자극은 뭔가 우리가 이동한다고 소뇌에 신호를 보내는데, 체성감각과 전정감각은 변화가 없습니다. 이 경우 역시 세 가지 감각들 간의 부조화에 의해서 멀미가 발생하게 됩니다. 또한 저음역의 진동이 많은 음악을 큰 소리로 들을 때 달팽이관과 인접한 전정기관의 진동으로 전정기관이 흥분해서 역시 멀미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서 교수 : 각종 게임이나 영상물을 즐길 때 멀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멀미를 사이버 멀미, 3D 멀미 등으로 칭하기도 하는데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눈에서 받아들이는 시각 정보와 전정기관에서 받아들이는 정보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몰입도가 높은 1인칭 시점의 게임을 하거나 3D 화면을 볼 때, VR을 이용할 때, 큰 화면을 볼 때 증상이 더 심해질 수 있으며, 화면이 격렬하게 움직이거나 시점이 뱅글뱅글 도는 과정에서 유발될 수도 있습니다.
Q. 멀미를 완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혹은 멀미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안 교수 : 가장 먼저 구토나 울렁거림을 줄여주는 멀미약을 복용할 수 있고, 생강이나 생강음료를 먹는 것이 멀미를 어느 정도 예방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생강의 진저롤과 쇼가올 성분이 중추신경계를 진정시키고 소화기관을 편안하게 해서 멀미를 예방해 준다고 합니다. 의학 전문지(Lancet)에서는 평소 멀미를 심하게 하는 36명을 대상으로 생강 2캡슐을 먹은 그룹이 멀미약을 먹은 그룹에 비해서 2배 정도 멀미가 진정됐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가벼운 멀미증상도 부교감 신경을 자극해서 울렁거림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출발 전이나 휴게실 들리실 때 너무 많이 드시는 것은 삼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피곤한 상태도 피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통해 적당한 음악을 듣는 것은 부교감 신경을 안정시켜서 멀미 증상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Q. 멀미약은 언제 먹어야 가장 효과가 좋은가요? 또 알약, 물약, 패치 등 제형이 다양한데 어떤 것이 효과가 가장 빠를지 궁금합니다.
서 교수 : 멀미의 예방에 사용되는 약물들은 대부분 항콜린제와 항히스타민제입니다. 붙이는 패치제는 최소 출발 4시간 전, 털이 없는 곳에 붙여야 효과가 있으며, 양쪽 귀에 붙이면 용량 과다로 인한 부작용이 있으니 반드시 한 쪽 귀 뒤에 1매만 붙여야 합니다. 또 어린이에게 성인용 제품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패치제는 최대 3일까지 효과가 있으며 그 이후에도 사용해야 하거나 중간에 떨어질 경우 제거하고 새 제품을 붙여줘야 합니다.
정제나 액제, 츄어블정은 모두 즉각적인 효과가 있어 승차 30분~1시간 전에 복용하도록 권장되고 있으며, 필요시 정해진 시간에 맞춰 반복 복용할 수 있습니다.
Q. 반대로 멀미를 느끼더라도 약을 먹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을까요?
안 교수 : 멀미약에 들어있는 항콜린제제로, 약으로 아세틸콜린이 과하게 저하되면 방향, 평형 감각이 둔해지고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령자나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은 패치형 멀미약을 사용하면 자칫 인지력이 떨어지고 심한 경우 교통사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패치형 멀미약은 전립선 비대증이나 녹내장이 있는 환자 경우 사용하면 안 좋습니다. 복용하는 멀미약은 식품의약안전처에서 만 3세 미만 영유아와 수유부에게 멀미약 복용을 금하고 있고, 패치 타입의 멀미약의 경우 7세 이상에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서 교수 : 모든 약제는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하여 정해진 용량과 용법을 준수해야 하며, 녹내장, 서맥 환자, 천식 발작, 전립선 비대증 등의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임산부, 수유부 및 영유아, 더불어 감기약 등의 유사 성분의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경우 멀미약을 복용해서는 안 됩니다.
Q. 유독 심하게 멀미를 느끼는 사람, 멀미가 점점 심해지는 사람은 멀미 아닌 다른 질환의 징후일 수 있을까요?
안 교수 : 편두통이 심한 경우 멀미를 심하게 앓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오래된 스트레스로 인해 몸의 적응능력이 떨어진 경우 역시 멀미를 예전에 비해서 더 자주 앓을 수 있습니다. 드물게는 뇌종양, 혹은 뇌혈관 이상으로 인해 멀미가 예전에 비해 더 자주 심하게 발생할 수도 있으니, 이런 경우 반드시 이비인후과, 혹은 신경과를 방문해 뇌혈관 MRI 등을 검사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서 교수 : 일상생활 중 심한 움직임이 없는데도 멀미 증상이 나타난다거나, 어지럽고 메스꺼운 증상, 구토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경우에는 멀미가 아닌 다른 전정 질환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랬구나. 세 감각기관이 관여하는 멀미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이유는 알았으니 멀미가 예측되는 상황엔 대처법을 미리 생각해두자. 움직임도, 시각 변화도 없는데 멀미를 심하게 느끼거나 시도때도 없이 느낀다면 병원을 가자.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