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 올해 대규모 신규 채용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비대면 금융 거래 확대 등의 이유로 파격 조건까지 내걸며 희망퇴직을 단행한 것과 상반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당국의 ‘돈잔치’ 압박에 떠밀리듯 채용 계획을 발표한 모양새다. 전문가는 금융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맞지만,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권 청년 일자리 간담회’를 개최, 금융권 채용현황과 계획 등을 공유했다. 금융권은 올 상반기 4700여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은행연합회와 생명·손해보험협회, 금융투자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금융권 6개 협회 회원사의 올해 상반기 신규 채용 예정 인원은 총 4719명(이미 채용한 인원 포함)이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채용 인원이 742명(48%) 대폭 늘었다.
이례적으로 업권 채용 계획 공표…“상황 어렵지만 고용 창출 동참”
은행연합회는 20개 은행이 올해 상반기 2288명 이상을 신규 채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742명(48%) 늘어난 숫자다. 하반기까지 합하면 은행권은 올해 약 3700명 규모로 채용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년 대비 약 600명이 늘어난 셈이다.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는 전날 일제히 보도자료를 내 총 1000여명을 올해 상반기 중 신규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별 기업이 채용 규모를 자체적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협회 차원에서 업권 채용 계획을 공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손보업계는 20일 상반기 중 17개사에서 청년 513명을 신규 채용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생보업계는 453명을 새로 뽑는다. 손보협회는 “고금리, 고물가에 따른 실물경제 둔화 등으로 불확실성이 점증하고 고령화, 나노가족 등 인구구조 변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신규 고용 창출에 적극 동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축은행은 약 151명(기채용 인원 포함)의 정규직 신입직원 채용 계획이다. 전년보다 소폭 감소한 규모다. 저축은행중앙회는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라 계획 중인 채용 규모는 예년 대비 감소했으나 하반기 중 경영환경이 호전될 경우 전년 수준으로 채용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구조조정한 지 얼마 됐다고…“뭐하러 거액 주고 명예퇴직 실시했나”
일각에서는 경영 여건 악화를 이유로 희망퇴직을 실시해놓고 다시 대거 신규채용하는 행보는 앞뒤가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카드사에서는 지난달 4일 하나카드가 1968년생(만 55세) 중 만 10년 이상 근속한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퇴직자 신청을 받았다. 현대카드, 신한카드, 우리카드도 줄줄이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특히 은행권의 구조조정 규모가 컸다. 고금리가 불러온 이익 증대로 희망퇴직 조건이 확대된 것도 한 요인이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2월28일부터 지난달 2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700명 이상이 의사를 밝혔다. 같은달 NH농협은행에서는 지난 2021년 말(427명) 보다 많은 493명이 희망퇴직했다. 1년 전 5대 시중은행에서 직원 2244명이 희망퇴직했는데 이번에는 더 규모가 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채용 확대 발표에도 금융권, 특히 은행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쉽게 돌아서지 않는 분위기다. “지방 점포는 줄줄이 문 닫았는데 왜 이렇게 많은 인력이 필요한가”, “서민 대출 이자나 깎아주지 사람을 더 채용해 더 많은 돈잔치를 하겠다는 건가”, “어차피 이렇게 많이 뽑을 거면 왜 거액 줘가면서 명예퇴직 시켰냐”라는 목소리가 온라인상에서 잇따랐다.
전문가 “정부-금융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닌지 살펴봐야”
업계에서는 이번 신규 채용 발표가 정부 눈치보기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금융권 성과급을 겨냥한 윤 대통령의 ‘돈잔치’ 발언 이후 금융당국은 성과급 체계를 살펴보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협회 차원에서 채용계획을 발표하고 은행권에서 채용 규모를 크게 늘린 것은 정부 압박 때문”이라면서 “정부와 금융당국이 최근 금융권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금융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 정부가 금융당국을 앞세워 금리 인하를 비롯, 금융권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력 수급 계획은 기업이 현 상황과 미래 사업계획에 따라 자체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다. 현재 은행권은 점포가 대폭 줄어들고, 신사업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계속 감원을 해왔다”며 “이번 채용 계획 발표는 정부 으름장에 금융권이 과하게 눈치를 보고, 떠밀리듯 발표한 모양새”라고 했다.
권 국장은 “사실 겉으로는 압박하고 있지만 현 정부가 펼치는 정책은 반대다. 이면에서는 금산분리 완화에 시동을 거는 등 금융권 사업영역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정부는 금융권을 압박해 일자리를 확대한 것처럼 보여서 좋고, 금융권도 정부 말에 듣는척 하며 규제 완화를 얻어내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