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사진)은 “어렵고 소외된 계층과 늘 함께 하겠다”는 신념을 가진 국민의힘 소속 4선 시의원이다. 스스로를 ‘의회주의자’라며 소모적인 정쟁보다 ‘대화와 타협’으로 지난해 7월부터 임기 2년의 서울시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수도 시의회를 이끄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평소에는 트로트 방송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우리 시대 아버지이기도 하다. 708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이었으며 자식들을 위해 희생만을 강요당하던 세대. 그에게 있어 시민은 자식과도 같다. 이들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쿠키뉴스는 최근 서울시 의회에서 김 의장을 만나 시정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의장은 먼저 지난 1월 화마가 덮친 구룡마을에 대해 입을 뗐다. 그는 “사람들이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만 이야기한다. 약자가 거기만 있느냐. 구룡마을 같은 판자촌은 약자가 아니냐”며 서울시의 보여주기식 행태를 비판했다. 김 의장이 중심이 된 의회가 나서자 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구룡마을 판자촌을 포함한 강남 무허가 주택들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김 의장은 임기 중 반드시 “의회의 위상을 바로 세우겠다”고 다짐한다. 그동안 시의회가 집행기관의 ‘거수기 역할’을 해 왔다는 지적에 대한 통렬한 반성에서다. 그는 “의회가 시민의 뜻에 반하는 데도 집행기관과 같은 방향으로 차를 타고 갔다”면서 “11대 시의회는 여야의 개념을 떠나서 시민을 보고 정치를 하겠다. 시민의 뜻에 반하면 어떤 경우에도 거부하고 바로 잡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김 의장은 “집행기관인 서울시청과 서울시교육청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고, 불합리한 예산 집행을 투명하게 개혁하겠다”고 덧붙였다. 용도가 불요불급하거나 집행목적이 불분명하고 사업효과가 불투명한 정책, 이른바 ‘3불 정책’을 반드시 퇴출시키고 예산 집행을 시정하겠다는 것.
그는 “시민을 위한 정책에 투입되는 예산은 알뜰하게 편성돼야 한다. 시민이 낸 세금이 투명하게 집행되고 효과가 분명하게 나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시장과 교육감이 선거기간 내세운 공약 사업이라도 필요하다면 인정하고 지원해 주겠지만, 아니라면 가차 없이 메스를 들 것이다. 이를 통해 시정과 교육 행정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정책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심소득(복지정책)과 서울런(교육정책), 조희연 시울시교육감의 태블릿PC와 전자칠판 보급 등이다. 아직 시범사업 단계이지만 목적과 효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김 의장은 오세훈 시장의 불통 행보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오세훈 시장이) 지난해 싱가포르 방문 현장에서 의회와 논의되지 않은 도시개발 정책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의회가 열렸을 때 시장에게 대놓고 ‘그렇지 마라’고 했다. 서울 시민과 직결된 정책을 해외발 뉴스가 아니라 시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먼저 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런 대쪽 같은 소신은 그가 정치를 대하는 자세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정치인이지만 “한번도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정치란 당리당략에 따라 편가르기식 정쟁의 도구가 아닌 ‘시민을 위한 봉사’이기 때문이다. 보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낮추는 것이 몸에 베여 있다.
김 의장은 의회 내에서는 소통을 강조한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시의회에 몸담으면서 다수당의 밀어붙이기식 힘의 논리를 누구보다도 몸소 경험했다. 11대 서울시의회가 소속 당인 국민의힘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행보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그는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쳐와도 대화로 그리고 타협으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생활정치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의원이 됐다”며 의장이 된 후에도 이런 원칙에 입각해서 시의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야를 떠나 의회는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정책 결정은 다수당의 힘의 논리가 아니라 여론을 보고 해결해야 한다. 다수 여론이 어디에 있는지, 보편적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그걸 보고 판단해야 한다. 힘의 논리로 아주 편향되고 왜곡된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다”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야당 주장도 정당하다면 당연히 반영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의회가 시민으로부터 부여된 책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에 물탄 듯 모든 의견이 서로 일치한다면 의회가 필요 없다. 집행기관만 있으면 된다. 모든 현안과 안건에 있어서는 서로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놓고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런 것이 바로 건강한 의회”라며 여야의 소통을 역설했다.
김 의장은 최근 논란이 된 무임승차 연령상향에 대해서도 소신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현재 60·70대는 산업화를 이룬 주역이다. 사회를 위해 희생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은 받지 못했다. 이 정도 보답은 당연하다”며 일부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무임승차 연령 상향과 관련해서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어 “평균 연령이 늘어나서면서 조정의 필요성이 생겼다. 하지만 이걸 70세로 상향하려면 자치단체의 일방적인 행정이라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나설 것을 촉구했다.
또한 김 의장은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지하철 적자에 대해선 분리 대응을 강조했다. 그는 “지하철과 버스 운영의 적자를 노인 무임승차와 결부해서는 안된다. 서울시 지하철 적자 1조2000억원 가운데 75%가 요금이 원가에 못 미쳐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적자를 메우는 데 세금이 들어가는 것보다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일정한 비용을 부담하는 게 조세 형평성이 원칙이 맞다”고 밝혔다.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