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어떤 순간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한다. 1952년, 부모 손에 이끌려 극장을 찾은 어린 새미(마테오 조리안)도 삶을 뒤흔든 경험을 맞는다. 새미는 어두컴컴한 극장이 무섭다. 큰 화면에서 괴물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먹어서다. 어린 소년 앞에 펼쳐진 건 세실 B 드밀의 영화 ‘지상 최대의 쇼’. 새미는 스크린 속 열차와 차량의 추돌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침대에 누워도, 가만히 있어도 열차가 탈선하는 순간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장난감으로 이를 재현하던 새미는 어머니 미치 파벨만(미셸 윌리엄스)에게서 받은 카메라로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담아내기 시작한다. 새미로 대표되는 거장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를 만든 최초의 순간이다.
영화 ‘파벨만스’(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가족을 배우삼아 영화를 만들던 유년기부터 가족 불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 등 실제 겪은 일들을 고스란히 담았다. 스필버그 감독은 새미(가브리엘 라벨) 시각에서 담담하게 파벨만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영화에 여타 감정을 쏟아내진 않는다. 그는 자신만의 영화 회고록에 연민이나 자화자찬을 더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그린 세밀한 연출력이 인상적이다. 과감한 조명·촬영 구도와 이야기에 맞춰 적절히 어우러진 음악까지, 명성다운 연출력의 정수를 구현한다. 가장 압권인 건 새미가 어머니 미치의 비밀을 들춰내는 장면이다. 두 인물의 감정을 연출만으로도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영화가 범람하는 시대에도 ‘파벨만스’는 자신만의 길을 간다. 독특한 상상력이나 극적인 전개는 없다.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이나 웅장한 영상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연출과 이야기로만 승부하는 정공법을 택한다. ‘파벨만스’는 자전적 영화지만 주인공을 멋있게 꾸며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되 자잘한 유머코드는 놓치지 않는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적절한 균형감을 유지하며 전개는 담백하게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진정성 또한 도드라진다.
‘파벨만스’는 스필버그의 회고이자 진솔한 응원이다. 미치는 파벨만 가족을 두고 “과학자와 예술가의 전쟁터”라고 표현한다. GE 엔지니어인 남편 버트(폴 다노)와 피아니스트인 자신의 성향, 성격이 확연히 달라서다. 단란하지만 단절된 집에서 새미는 영화를 만들며 비로소 자아를 확립한다. 불안한 시기에도 그는 영화로 소통하고 답을 찾는다. 평화가 깨지고 엉망진창 조각난 가정에서 새미는 “고쳐낼 수 없는 건 겪어낼 수밖에 없다”고 깨닫는다. 이리저리 부딪히며 아파하던 새미는 조금씩 성장한다. 감독 데뷔를 앞두고 좌절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존경하는 감독 존 포드(데이비드 린치)와 만날 기회를 얻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성장통과 함께 나아가는 새미를 보면 마음속에서 묘한 용기와 격려가 움튼다.
새미의 영화 작업은 점점 더 정교해진다. 가족들에게 행동을 지시하고 상황을 담거나 꾸며내는 초기 단계를 거쳐 조금씩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친구들을 배우로 기용한 서부극을 만들며 그는 기술적으로도 진일보한다. 격발을 표현하기 위해 옷핀으로 필름에 구멍을 뚫거나, 널빤지를 이용해 흙이 튀는 효과를 내는 등 기발한 연출법을 고안한다. 필름을 일일이 돌려보고 가위로 잘라 이어 붙이며 편집에 열을 올린다. 떡잎부터 달랐던 이는 서서히 될성부른 나무가 되어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새미를 비추며 허둥지둥 카메라 위치를 다잡는 스필버그 감독의 연출은, 새미가 극 전반에서 보여준 유쾌한 연출력과도 연결된다. 실제와 영화를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는 솜씨가 일품이다. 유연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보다 보면 2시간31분에 달하는 상영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12세 이상 관람가. 현재 상영 중.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