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증은 넘친다. 물증이 관건이다. 운전자는 블랙박스 배터리가 방전돼 녹화된 영상이 없다고 한다. 뻔한 레파토리다. 보험사와 협력 업체가 아닌 일부 견인 기사는 블랙박스를 숨기라며 ‘코칭’도 한다. 주변 CCTV를 확인하려 해도 경찰이 아니라 잘 보여주지도 않는다. 어렵게 구해 핸드폰으로 CCTV영상을 촬영해 제출해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원본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 놓기 일쑤다.
이런 난관 속에서도 매의 눈으로 보험사기를 잡아내는 저승사자들이 있다. 바로 보험사의 보험사기특수조사팀(SIU)이다. 2021년 방영된 드라마 ‘구경이’에서 배우 이영애가 경찰 출신 보험조사관을 연기했다. 이은해(31) 남편이 익사한 사건에 대해 경찰은 단순 사고사로 판단했지만 끝까지 의심을 놓지 않고 이씨를 의심해 사건을 수면 위로 올린 것도 SIU다.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에서 채경환 현대해상화재보험 보험조사파트(자동차보험) 수석을 만나 보험 사기 심각성을 들었다.
채 수석은 15년 차 베테랑 보험사기조사원이다. 주변에서 ‘보사달’, 즉 보험사기 적발의 달인으로 불린다. 2008년 현대해상에 입사하기 전에는 7년 동안 경찰로 일했다. 강력반 형사로 ‘포천 여중생 매니큐어 살인사건’을 담당하기도 했다. 현대해상 SIU는 전원 경찰 출신이다. 날이 갈수록 치밀해지는 보험사기에 대응하기 위한 대형 손해보험사들의 자구책인 셈이다.
경기 불황으로 증가세…젊은층은 고의 사고 多
보험사기로 일반 가입자 보험료가 줄줄 새고 있다. 보험사기로 지난해 적발된 규모만 1조818억원. 역대 최고치다. 사기 유형별로는 사고 내용 조작이 61.8%(6681억원), 허위 사고 17.7%(1914억원), 고의사고 14.4%(1553억원) 순이다. 보험 종목별로는 생명보험보다 손해보험 적발금액이 압도적이다. 무려 94.6%(1조237억원)에 달한다.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는 결국 보험료를 인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채 수석은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보험사기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연령별로 20~30대는 구직, 40~50대는 실직, 고령층은 무직으로 인한 생활고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또 벌금이나 기소유예 등 처벌이 솜방망이인 점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았다.
“영화 찍어도 돼요” 기막힌 보험사기…새 나가는 보험료
사기 수법도 날로 진화한다.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를 모집해 저지르는 보험사기 조직단을 꾸리기도 한다. 지인들간 공모하면 적발이 쉽다는 점을 피해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광고로 조직원 모집을 한다. 운전자, 동승자 등 역할을 나누고 보험금을 타면 금액을 나누는 방식이다.
보험사기는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채 수석 말에 따르면 “영화를 만들어도 될 정도” 다. 수억짜리 보험을 여러 보험사에 들어놓고 딱 한 번 불입한 뒤 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등산객이 있었다. 유가족은 실족사를 주장했지만 결국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보험사 손을 들어줬다. 차량 범퍼에 스크래치만 남은 경미한 수준의 충돌사고로 모녀가 전치 2주 판정을 받았다. 치료비가 과하다면서도 보험료를 지급하라는 석연치 않은 판결로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이들이 치료비 명목으로 타간 보험료만 1억원이 넘는다. 한 남성은 버스에 앉아 있다가 급정거로 실명이 되고 성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며 치료비 6000만원을 요구했다. 정식 수사의뢰로 결국 보험사기 적발이 됐다.
강력계 형사까지 거친 그에게도 어려운 점은 있다. SIU에 수사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보험사기가 의심돼도 운전자가 블랙박스를 제거했다고 하면 찾을 방도가 없다. 사고 현장 주변에 있는 CCTV영상도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열람이 어렵다. 사기범이 조사원에게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겠다며 협박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경찰에 정식 수사 의뢰가 된 후, 보험사기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부서로 배당이 돼 사건이 종결되기도 한다. 자격을 갖춘 소수의 인력에 한해 조사권을 부여하는 민간조사원(탐정) 법제화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 어려운 실정이다.
보험 사기범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채 수석은 “형편이 어려운 청년이 배달 오토바이로 고의 사고 내는 경우를 많이 본다. 딱 자식뻘이라 정말 안타깝다”면서 “보험사기가 적발되면 받아 간 보험금을 다 토해내는 것을 물론이고 전과기록까지 남는다. 본인뿐만 아니라 나중에 본인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