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이 매년 발생하고 있다. 기후변화 등으로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연재해 발생시 시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보험금을 지원하는 풍수해보험 제도가 시행 중이지만, 산불 피해는 보장 대상에서 빠져있다. 행정안전부는 “장기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3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전날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인 산불이 발생했다. 서울 인왕산을 비롯해 전국에서 크고 작은 산불 모두 30여 건이 발생했다. 인왕산에서는 강한 바람을 타고 불이 빠르게 번지면서 한때 산불 대응 2단계가 발령됐고 축구장 20여 개 크기에 달하는 면적이 탔다. 충남 홍성, 대전에서는 전날 산불 3단계 규모의 화재가 발생해 주택 30채 등 모두 62동의 시설물이 피해를 입었다.
산불은 증가추세다. 지난해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여의도 면적(290㏊) 22배를 넘게 태우고서야 꺼졌다. 2012년 72㏊, 2013년 552㏊, 2014년 137㏊ 였던 산불 피해 면적은 지난해 지난해 2만4782㏊로 커졌다. 지난 20년간 최대 규모였다. 봄철 이상 고온, 가뭄 장기화 등 기후변화와 맞물려서 앞으로 더 산불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산불로 피해를 입었을때 화재보험이나 재산종합보험 등에 가입해둔 개별 가정이나 단체·기업은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다. 화재보험의 경우 면적 3000㎡ 이상의 학교·병원·공장이나 16층 이상 아파트, 11층 이상의 건물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거나 가입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화재보험 가입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매월 납부하는 보험료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2019년 강원도 고성, 속초, 강릉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발생한 피해시설은 주택과 창고·축사·관광세트장 등 총 2112곳에 달했지만 보험 피해신고 접수는 350여건에 불과했다.
화재보험협회 관계자는 “한국은 산에 인접한 주택 단지가 많아서 언제, 누구나 산불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면서 “일단 ‘우리 집에서 불이 나겠어’라는 안전 불감증이 크다고 본다. 또 불이 안 나면 지금껏 납부한 보험료를 환급받지 못하는 구조다 보니 가입률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자연재해 발생 시, 시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는 풍수해보험 제도를 시행 중이다. 풍수해보험은 예기치 못한 풍수해(태풍, 홍수, 호우, 해일, 강풍, 풍랑, 대설)로 인한 피해를 보상한다. 지진피해도 풍수해보험 보장 대상이다. 행안부가 관장하고 민영보험사가 운영하는 정책보험이다. 가입 대상 시설물은 △주택(동산 포함) △온실(비닐하우스 포함) △소상공인의 상가·공장이다. 정부가 보험료 70~100%를 지원한다.
하지만 산불은 풍수해보험 가입 항목에 들어가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 요구에도 수 년째 논의는 멈춰있다. 대형 산불이 잇따르며 산불 피해를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산불 빈발지역인 강릉시는 지난 2018년 풍수해보험 보상 범위를 산불로 확대하는 안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2020년 보험개발원에 연구용역을 맡기고 검토한 바 있지만 이후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풍수해보험 가입률은 저조하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행안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말 기준, 소상공인의 풍수해보험 가입률은 2.5%에 불과했다. 주택 가입률도 7.43%(14만6606건), 온실은 7.87%(1982.7㏊)로 모두 한자릿수에 머물렀다.
이로 인해 산불로 인한 재산 피해 보상은 여러 군데 허점이 있는 상태다. 지방자치단체가 드는 시민안전보험(예기치 못한 재난과 사고 피해를 본 시민을 돕기 위해 시가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보험)은 산불이나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만 보장한다. 재산 피해는 대상이 아니다. 산불로 재배하던 임산물이나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다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운영하는 농작물재해보험 제도로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장 품목이 70여 종에 불과하다는 게 단점이다.
행안부 재난안전과 관계자는 “산불은 일단 바람, 물에 의한 재난을 뜻하는 풍수해에 속하지 않는다. 산불을 대상에 넣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농림부, 산림청 등 소관 부서도 여러 곳이고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정책보험 대상 확대는 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