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은 2012년 서울 강남구 한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별다른 조치 없이 학교는 전학을 권했고, 박양은 인천의 한 중학교로 옮겨 생활했다. 강남의 한 고등학교로 입학한 후 다시 따돌림이 시작됐다. 견디다 못한 박양은 2015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씨는 다음 해부터 서울시 교육감과 학교폭력 가해 학생 부모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갔다.
소송을 시작할 때 만해도 이씨는 권 변호사를 믿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로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생각했다. 9일 오후 경기 과천에서 기자와 만난 이씨는 ‘최소 10년이 걸린다는 각오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자’라며 긴 싸움을 앞둔 자신을 다독이기도 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1심에서 일부 승소 후 권 변호사가 항소 여부를 물었다. 항소를 진행하기로 했고, 계약서를 쓰러 오라고 했다. 이씨는 1·2심 수임료로 총 990만원을 냈다. 이후 권 변호사의 연락이 뜸해졌다. 그래도 이씨는 권 변호사를 믿었다. 그가 모든 기회를 날린 그 순간에도, 이씨는 항소심에 나와 증언해줄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권 변호사는 항소심 재판에서 세 차례 불출석했다. 민사소송법 제268조는 소송 당사자들이 재판에 3회 불참하면 소를 취하한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소송은 원고 패소로 마무리됐다.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대체 왜 그랬는지 자세히 듣고 싶어요. 1~2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7년이에요. 자신이 없었으면 처음부터 맡질 말았어야죠. 다른 변호사에게 맡기라고 했어야죠. 겁이 나서 전화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은 자기가 한 짓이 어떤 짓인지 알고 있다는 거 아닌가요. 본인의 커리어를 망칠 정도의 타격이 있을 거란 걸 알면서 저질렀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이해하나요.” 이씨가 눈물을 흘렸다.
‘권 변호사를 겨냥한 비판 기사를 멈춰 달라’며 이씨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보도 이후 권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다고 했다. 이씨가 보여준 문자에는 ‘배려 고맙다’, ‘몸을 추스르면 연락드리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몸은 언제 추스러지는 건데요….” 이씨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9000만원을 3년에 걸쳐 유족에게 갚겠다는 일방적인 보상 각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간 후 네티즌들은 변호사법 제98조의6 징계청구의 시효 조항 ‘징계청구는 징계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3년이 지나면 하지 못한다’를 들며 권 변호사를 비판했다. 돈이 없다고 3년을 버티면 돈도 안 주고 징계도 안 받는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이씨도 온라인에서 이 내용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씨는 권 변호사에게 관련 이야기를 듣고 싶어 온라인 글을 캡처해 보냈지만, 지금까지 어떤 답도 듣지 못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권 변호사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씨와 그의 가족들에겐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다. “징계는 저희에게 큰 의미 없어요. 수위가 높아 봤자 최대 3년 정직이라고 하는데 끝나면 다시 변호사 활동할 수 있잖아요. 드라마에 나온 우영우나 신성한 같은 변호사가 있긴 한가요. 법적으로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는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어요.”
이씨는 권 변호사의 재판 불출석에 따른 피해를 묻기 위한 손해배상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에게 추천받은 양승철 변호사와 함께한다. 이씨가 손배소에 들어간 이유는 비단 권 변호사 때문은 아니다. “뉴스에 나온 전문가들은 손배소가 해결 방법인 것처럼 얘기하더라고요. 그럼 또 지난한 시간 보내야 하잖아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제가 잘 알아요. 저는 이 나라가 만든 시스템을 밟을 뿐이에요. 이 사안을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하는지 보고 싶어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이씨는 변호사가 망가뜨린 사건이 왜 재심이 안 되는 건지 사회에 묻고 싶다고 했다. “피해자 가족이 잘못한 게 무엇인가요. 저희 입장에서 재심이 이뤄져야 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재심밖에 답이 없어요. 잘못 꿰어진 상황을 왜 억울한 사람들이 인내하고 감당해야만 하는 건가요. 그게 답답해요.” 이씨가 가슴을 쳤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이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렵게 입을 뗀 이씨가 말했다. “방향을 잃었어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어요. 절망 속에서 어떻게 다시 고개를 들어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제가 숨 고르기나 할 수 있을까요. 어제는 퇴근하는데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가족은 왜 소소함에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없는 걸까요. 주원이가 그렇게 떠나기 전까지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인데요. 평범하게 사는 건 이제 힘들어진 것 같아요.”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