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메이드 카페 연 거 아세요? 예약해서 현장 르포 기사 써보면 어때요?”
“네. 해보겠습니다”라고 답할 뻔했다. 지난달 16일 오전 10시14분, 후배 기자가 보낸 메시지였다. 선배의 지시인가 순간 착각할 정도로 대단한 패기에 잠시 감탄했다. 마침 새 기삿거리를 찾고 있었다.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주제였다. 흔들린 정신을 붙잡고 “안 그래도 메이드 카페 기사를 읽고 있었다”며 “조만간 예약하자”고 침착하게 답했다.
메이드 카페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알고 있었다. 서양식 하녀 복장을 한 여성 직원들이 손님을 주인님으로 모시는 콘셉트 카페다. 반대로 집사 복장을 한 남성 종업원들이 손님을 모시는 콘셉트의 집사 카페도 있다고 들었다. 일본에서 생긴 독특한 문화라 외국인 관광객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고 한다. 과거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 뒷골목에서 하녀 복장 여성들이 홍보용 전단지를 나눠주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일본어로 소통할 자신이 없어 들어갈 엄두도 못 냈다. 한국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른 예약 마감은 메이드 카페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동시에 부정적인 반응도 많았다. 젊은 여성 직원이 돈을 낸 손님을 순종적인 태도로 주인님처럼 모시는 콘셉트가 문제였다. 유사성매매란 지적까지 나왔다. 메이드 카페를 다룬 기사도 대부분 성상품화를 우려하는 내용이었다. 아이템을 제안한 후배 기자도 근무하는 직원들을 궁금해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방심했다. 메이드 카페는 마음먹는다고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예약에 실패했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1분 만에 예약이 마감됐다. 다음 예약일은 4월12일 오후 8시. 또 예약 티케팅을 깜박한 사이, “바쁜 선배를 대신해 제가 성공했습니다”라며 후배 기자가 승전보를 전해왔다. 그동안 수많은 수강신청과 다양한 티케팅으로 다져진 젊은 청년의 민첩한 행동력에 “대단하다”고 진심을 담아 말해줬다. 4월 중순으로 방문일을 잡았다.
며칠 후 메일이 한 통 왔다. 예약자와 동반인 모두 사전 등록을 하고 각자 예약금 3만원씩 입금해야 했다. 1만원은 입장료, 2만원은 예약금이었다. 카페에서 이용하는 비용을 이미 예약금 형태로 내는 방식이었다.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노쇼 방지를 위해 예약자의 의지를 테스트하는 느낌이었다. 조금 과하다는 생각과 방탈출 카페 같은 체험형 테마 카페의 특성이란 생각이 교차했다. 취재 목적이 아니었으면, 입금 전 망설이는 시간을 더 오래 가졌을 거라 생각했다.
메이드 카페 이용 주의사항을 읽으며 마음의 문이 조금 열렸다. 방문자 마음대로 영상이나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했다. 직원 사생활이나 연락처를 물어보는 것도 금지였다. 가게 내부나 메뉴 촬영은 가능했다. 카페와 직원이 구경거리가 되고 일상에 피해가 가는 걸 방지하는 조치로 보였다. 직원을 한 명의 인간으로 대우하기 위한 절차라면, 예약금을 내는 정돈 괜찮다는 쪽으로 생각이 움직였다. 이렇게 지불한 금액이 직원들에게 어떻게 정산될지 궁금했다.
카페 방문 당일까지 별 생각이 없었다. 가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미리 정보를 찾아본 후배 기자가 보낸 “큰일 났어요. 주문 방법이…”라는 메시지를 보기 전까지 그랬다. ‘메뉴 주문에 방법이 있나’ 물음표가 생겼지만,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작품을 감상하자는 마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지 않았다. 카페 앞에서 후배 기자와 만나 지하로 내려갔다. 잔뜩 찌푸린 날씨가 잠시 후 찾아올 미래를 암시하는 듯 했다.
“주인님 들어오십니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신분증을 확인하고 카페에 입장하자 갑자기 주인님이 됐다. 내가 왜 주인님이지 하는 의문이 카페를 나올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평범한 카페 입구 유리문은 이세계(異世界)로 연결되는 통로였다. 그곳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법칙이 존재했다. 마치 인생 2회차로 환생하거나 낯선 세계에 불시착한 웹소설 주인공이 된 듯 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보통 적응을 잘한 인물이 무사히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하트 모양 메뉴판을 들고 온 직원이 목에 건 명찰을 보여주며 자신의 닉네임을 소개했다. 이곳에선 모두 자기소개를 해야 하나 싶어 내 이름을 말할 뻔 했다. 그는 메뉴를 주문하려면 “츄츄~”라고 직원을 불러야 한다며 고양이처럼 양손을 움직이는 동작을 알려줬다. 당황하지 않은 척 알겠다고 답했다. 표정관리에 실패한 테이블 건너편 후배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난 도저히 못하겠으니, 이제부터 네가 다 알아서 하라’는 메시지를 눈빛에서 읽어냈다. 나도 ‘자신은 없지만, 일단 알겠다’는 메시지를 눈빛으로 전했다.
다른 카페엔 없는 메뉴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랜덤 간식과 랜덤 음료가 있었다. 어떤 메뉴들이 랜덤하게 나오는지 설명해줬다. 특정 음료를 주문하려 하자, 직원이 다른 음료가 더 맛있다고 역제안 했다. 갑자기 신뢰가 커져 과감하게 랜덤 음료를 주문했다. 치즈라는 메뉴는 직원과 폴라로이드 사진 촬영을 의미했다. 평소 사진을 안 찍는 편이지만, 사진을 꼭 찍으라는 후배의 부드러운 말투에 알겠다며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준 동작과 함께 어색하게 “츄츄”라고 부르자 직원이 반가워하며 달려왔다. 살면서 보지 않아도 될 광경을 목격한 후배에게 미안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말고 네 테이블이 더 있었다. 여성 손님이 셋, 남성 손님이 넷이었다. 혼자 온 손님도 있었다. 가게 안은 콘크리트 벽에 아늑한 조명, 예쁜 장식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한쪽 유리벽 너머엔 커다란 침대, 입구 쪽엔 예쁜 서양식 욕조가 있었다. 카페를 열기 전엔 콘셉트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였던 것 같았다. 한쪽 벽엔 손님들이 찍고 간 폴라로이드 사진이 붙어 있었다. 직원들 복장만 아니면 메이드 카페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갑자기 한 직원이 다가와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맞춰보라고 하는가 하면, 평소 취미가 무엇인지, 어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대화를 이어가려는 그의 노력에 우린 면접에 임하는 성실한 구직자처럼 열심히 답변하려 애썼다. 잠시 후 이번엔 다른 직원이 와서 대화를 시도했다. 각자 MBTI를 이야기하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이야기하니 직접 노래해주기도 했다. 일하지 않을 땐 무엇을 하는지, 일주일에 몇 번이나 근무하는지 역으로 묻기도 했다. 취재를 위해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사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보일 것 같아 더 묻지 못했다.
함께 간 동반인과 대화하기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옆 테이블에서 직원과 손님이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잘 들렸다. 다른 테이블에선 생일파티가 진행 중이었다. 이번엔 한 직원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첫 방문 손님을 위한 굿즈인 주인님 카드를 적어줬다. 내 이름과 생일, 방문 날짜와 직원의 닉네임을 기록했다. 재방문 때 꼭 이 카드를 가져와야 한다고, 지참하지 않으면 반성문을 써야 한다고 했다. 웃으며 말했지만 농담이 아닌 것 같았다.
치즈 티켓도 받았다. 당일 근무자 중 원하는 직원의 닉네임과 내 이름을 적어 제출하면, 입구 쪽에서 함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 시스템이었다. 막상 사진을 찍는 것보다 어느 직원 이름을 적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이날 처음 본 누군가를 지명하는 기분이 이상했다. 아이돌 팬 사인회나 불법 유흥업소 이미지가 잠시 머리를 스쳐갔다. 한참을 망설이다 처음 맞아준 직원 이름을 적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가 야옹이 포즈를 제안했지만, 브이 포즈 정도로 합의했다.
1시간이 지났다.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예약한 1시간이 지나면 30분 동안 정비하고 다음 예약자들을 맞는 시스템이었다. 손님이 퇴장할 때마다 직원들이 “주인님, 외출하십니다” “외출 잘 다녀오세요. 주인님”이라고 인사했다. 그제야 그곳이 나의 집이었다는 걸 알았다. 긴 외출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리란 설정의 세계관이 아득한 여운을 남겼다.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왔다.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았지만 고작 1시간이었다. 바깥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화롭고 조용했다.
잠시 주인님으로 살았지만, 정말 주인님이었다는 실감은 들지 않았다. 메이드 카페 내 규칙과 흐름을 따라가기 바빴다. 손님들이 직원들을 하대하거나 곤란하게 하는 일은 없었다. 모두가 콘셉트에 충실하며 그곳만의 시간과 공간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직원들도 억지로 상품이 돼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정한 가상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드러냈다. 처음엔 다들 직원과 손님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각자 다른 개성이 드러나며 개인으로서의 존재감이 선명해졌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비용을 내고 특정 직원을 지목해 같이 사진을 찍는 과정은 어떻게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누군가에겐 기념사진을 남기는 의미겠지만, 누군가에겐 돈으로 사람을 상품처럼 구매하는 의미지 않을까. 메이드 복장의 여성 직원들이 무릎 꿇고 주문을 받거나 말을 거는 콘셉트도 편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무리 콘셉트라도 그들와 내가 동등한 위치에서 소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사람을 하인으로 부렸던 근대 귀족 문화가 현대 서울 한복판에서 하나의 콘셉트 체험 문화로 재현됐다. 모두 가짜니까, 콘셉트니까 괜찮다고 넘어갈 수 있을까. 그러기엔 사람을 상품처럼 사고 팔던 당시 제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 제도가 얼마나 어렵게 사라졌는지 모두가 안다. 왜 남성이 아닌 여성 하인들만 가득한 풍경을 재현했는지, 그것이 어떤 맥락과 이미지로 소비되는지도 안다. 메이드 카페 다녀왔다는 소식에 남성 지인들이 건넨 “예쁘냐” “얼마냐”는 질문이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