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공익신고자에게 신원이 노출돼도 괜찮냐고 묻는 등 미흡하게 대응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8일 쿠키뉴스 취재에 따르면 흥국화재가 중소기업(개인사업자) 대출 고객에게 금융상품 가입을 강요(일명 ‘꺾기’)하고, 당국에 고의로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내용 등 7건에 대한 공익신고가 지난달 1일 금감원에 접수됐다. 16일 쿠키뉴스는 흥국화재 부당 추심 논란<[단독] 흥국화재 부당 추심 논란…금감원 조사 중>을 보도한 바 있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신고 결심한 공익신고자는 금감원의 ‘보여주기식’ 접수 시스템에 불편을 겪었다. 금감원 불법금융신고센터 페이지에서 공익신고를 접수할 수 있다. 신고 취지 및 이유, 내용을 작성하고 증거 파일을 첨부하면 된다. 첨부할 수 있는 증거 파일은 최대 한 개다. 압축파일은 들어가지 않는다.
공익신고자 A씨는 수집한 다수의 증거자료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A씨는 배정된 조사 담당자에게 접수 시스템 문제를 설명하고, 추가 자료를 제출하고 싶으니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자는 일반 민원은 증거 파일을 3개까지 넣을 수 있다며, 일반 민원으로 추가 접수하라고 안내했다. A씨는 일반 민원이 아닌 공익 신고 처리를 요구하며 실랑이가 이어졌다. 담당자가 이메일 주소를 알려준 것은 처음 신고한 날에서 2주 넘게 지난 시점인 지난달 19일에서였다.
담당자가 공익신고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듯한 대응도 있었다. 담당자는 “조사를 진행하려면 제보한 증빙 자료를 회사에 전달해야 한다”며 “민원인 성명이 들어간 문건이 있다. 회사에 신고자 정보가 알려져도 괜찮나”라고 A씨에게 문의했다. A씨가 상식적이지 않다고 항의하자 담당자는 이름이 들어간 문건은 빼고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공익신고 조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금감원은 공익신고 접수 당시, 조사에 약 1개월 소요 예정이라고 안내했다. A씨는 한 달 넘게 조사 결과를 받지 못하다가 조사 연장 통보를 받았다. 금감원 담당자는 현장검사 출장 일정으로 바빴고 민원인과 증거 보완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됐다는 입장이다. 또 “제보자 신원 관련 질문은 이름이 들어간 문건을 어떻게 처리할 지 확인차 물어본 것”이라며 “위법소지를 이제 확인하려 한다”고 말했다. 흥국화재는 지난 15일 “아직 금감원에서 정식 통보 받지 않아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 이상희 변호사는 “기관은 제보자가 제대로 신고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출 책임이 있다”며 “제보자가 증거 자료를 전달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면 다른 방법을 안내해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제보자 신원 보호는 공익신고 제 1원칙이다. ‘이름이 알려져도 괜찮겠나’라는 질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제보 내용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제보자를 보호하는 게 금감원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