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원 장관은 지난 16일 취임 1주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세제도란 게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목돈을 빌린 것인데 들어올 세입자가 없다거나 시세가 내려갔다는 이유로 당장 갚을 생각을 안 한다는 게 황당한 얘기”라며 “돌려막기식의 이런 판이 유지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세는 내집마련 디딤돌?…이젠 옛말
전세는 볼리비아와 인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임대차계약 형태다. 전세는 과거 제도권 금융이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私)금융을 통해 적은 자기자본으로 자가를 소유하고 가격상승 추세를 활용하여 자산을 증식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주거 안정 차원에서 전세는 임차인들이 선택 가능한 점유형태 중 하나로서 자가로 가는 징검다리 ‘마지막 디딤돌’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주인에게 목돈을 전세보증금으로 지급하고, 이를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은 전세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1월 보고서를 통해 “전세는 서민들의 전 재산일 수 있는 전세보증금을 은행과 같은 법적 규율을 받는 기관이 아닌, 순수한 사인에게 맡기는 행위”라며 “그로 인하여 전세 보증금 사기와 미반환의 위험성은 다른 계약에 비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호병 단국대 부동산학부 교수는 “점진적으로 전세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전세제도는 ‘사적 금융제도’다. 주거권이라는 기본권과도 연관이 있으면서 투자수단으로도 활용된다는 이중적 성격 때문에 그동안 정부가 관여하기 까다로웠다”면서 “이로 인한 여러 부작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전세제도, 빈부격차 만든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현 전세제도는 주거 안정이 아닌 끝없는 빈부격차를 초래한다고 못 박았다. 최 교수는 “금융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후진국에서나 쓰는 전세제도가 한국에는 일반화되고 은행에서는 전세자금대출까지 해줬다”며 “전세자금대출은 받는 사람이 금융적으로 손실을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목돈을 집주인에게 맡기니 이자도 붙지 않고, 전세자금대출 이자는 또 이대로 빠진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갭투자를 해 다주택자가 양성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며 양극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전세제도가 사라지면 대안은 있을까. 최 교수는 세입자의 내집마련을 적극 유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등을 통해 신규 아파트 분양가를 대폭 낮추고, 공공분양의 30년 저금리 모기지를 민간분양으로도 적극 확대해 내 집 마련 부담을 줄여주자는 제안이다. 다주택자에게 양도세를 완화해주거나, 현재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을 매입하면 취득세를 면제해주는 방안도 당장 실시할 수 있는 대책으로 제시했다.
제도 손질 동의하지만…“폐지는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1970년대 사인간 거래에서 만들어진 관행을 정부가 없애는 게 가능할지는 의문”이라면서도 “전세사기, 역전세, 깡통전세를 방치할 수는 없다. 가장 먼저 무분별한 전세자금대출을 고칠 필요가 있다. 현재 90~100% 수준인 전세자금 보증비율을 2008년(약 60%대) 수준으로 내려야한다”고 봤다.
다만 ‘전세제도가 문제니 전세를 없애자’는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원 장관 발언은 전세 폐지가 아니라 가능한 모든 방법을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전제하고 “전세사기나 역전세, 그리고 해외에는 없다는 이유로 선진국처럼 월세가 일반화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 전세금이 전세자금대출이 아닌 오롯이 본인의 돈이라면 여전히 임차인에게는 월세보다 전세가 유리한 경우가 많다. 만약 월세만 존재한다면 월수입의 상당 부분이 주거비로 소요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