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인스타그램이 싫어/ 틱톡도 싫어.” 그룹 (여자)아이들이 지난 15일 공개한 노래 ‘알러지’(Allergy)에서 멤버 민니는 영어로 이렇게 읊조린다. 지난해 SNS에서 ‘톰보이’(TOMBOY) 챌린지를 유행시킨 (여자)아이들이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거부하다니. 이유는 따로 있다. 닷새 먼저 공개된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은 자신을 SNS 속 타인과 끝없이 비교하며 우울의 늪에 빠진다. 온라인에선 “가사가 내 현실을 말하는 것 같아 눈물 났다”(유튜브 뚱*) “인스타그램을 보며 느낀 상대적 박탈감이 이 곡에서 느껴진다”(멜론 여기가***) 같은 반응이 쏟아진다.
‘나를 사랑하라’고 노래하던 4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눈부신 겉모습 뒤로 감춰둔 우울을 음악 안에 털어놓기 시작했다. ‘알러지’가 대표적인 보기다. (여자)아이들은 이 곡에서 “난 내가 너무 싫거든”이라며 “와이 엠 아이 낫 허”(Why am I not her·왜 나는 그녀가 아니지)라고 묻는다. ‘알러지’ 가사를 쓴 멤버 전소연은 최근 열린 신보 제작발표회에서 “SNS는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드러내는 공간이다. SNS를 보며 자존감이 낮아지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알러지’가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느끼는 우울을 노래한다면, 그룹 에스파가 지난 8일 공개한 ‘아임 언해피’(I’m Unhappy)는 SNS 속 자신과 실제 자신 사이 불협화음을 고백하는 곡이다. “새 피드 속의 우릴 보면/ 왠지 딴 세상 얘기 같아” “내가 아닌 나로만/ 가득한 세상은 싫어” 등의 가사에선 삶을 꾸며내며 겪는 피로와 허무가 느껴진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SNS 속 자신과 현실에 괴리감을 느껴 더는 남들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겠다는 메시지”라고 소개했다.
화려한 SNS 피드로 자기 혐오를 감추는 이들이 어디 아이돌 가수뿐이랴. 미국과 영국 등에선 SNS가 청소년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가 여러 번 나왔다. SNS가 청소년들에게 우울증과 섭식장애, 심할 경우 자살 충동을 일으킨다는 조사 결과를 페이스북(현 메타)이 숨겼다는 내부 고발도 있었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만 16살 미만 아동·청소년의 SNS 사용을 금지하고, 각 기업이 사용자 연령을 책임지고 확인하는 법안을 도입할 계획”(크리스 스튜어트 유타주 하원의원)이란 성명까지 나왔을까.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20세 미만 아동·청소년 극단 선택 시도자 수(5486명)는 4년 전인 2017년(2667명)보다 2배 넘게 늘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미국 팝 시장에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 이전부터 나타난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데뷔곡 ‘드라이버 라이센스’(Drivers License)를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괴물 신인’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노래 ‘질러시 질러시’(Jealousy, Jealousy)에서 “내가 휴대폰에서 본 여자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해”라며 “그들의 아름다움이 내 부족함은 아니지만/ 그 무게는 내 등에 얹힌 듯해”라고 자조한다. 래퍼 로직도 SNS 유명인을 보며 느끼는 열패감을 2019년 발표한 노래 ‘워너비’(Wannabe)에 털어놨다. “소셜미디어는 대회야/ 이기지 못하면 우울해지지/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들고/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과 불안을 매개로 Z세대와 소통해온 빌리 아일리시는 지난 3월 한 방송에서 “휴대폰에서 소셜미디어 앱을 모두 삭제했다”고 밝혔다.
김 평론가는 “K팝은 극단적인 화려함을 기초로 하는 장르고, 소셜미디어 역시 희망찬 분위기로 그려 왔다. 그러다 최근 (여자)아이들의 ‘알러지’, 에스파의 ‘아임 언해피’처럼 이에 반감을 드러내는 노래가 조금씩 나오는 것”이라면서도 “이것이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내세운 콘셉트인지 진정성 있는 메시지인지는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쪽에선 SNS의 악영향을 노래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선 SNS에서 인기인 ‘핫 걸’ 이미지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자가당착이 벌어진다는 지적이다. 김 평론가는 “다만 K팝 업계의 모순을 지적하는 이 같은 메시지가 더 나은 K팝 산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