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죽은 이의 목소리를 되살리고, AI가 인간을 대신해 글과 그림, 음악을 만든다. 멀게만 느껴졌던 AI 창작시대가 현실로 다가오자 곳곳에서 진통이 터져 나오고 있다. ① AI에게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원작자의 권리가 침해되고 ② AI가 생성한 창작물을 저작물로 인정할 수 없으며 ③ AI가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다. AI를 옹호하는 쪽은 ① AI를 활용해 콘텐츠 시장을 넓힐 수 있고 ② 창작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단축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며 ③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라이벌이 아닌 창작을 돕는 동료라고 강조한다.
AI 창작 어디까지 왔나
“24시간 난 어쩜/ 1초도 쉰 적 없죠” 브라질 삼바 음악에서 따온 리듬이 구수한 트로트 자락과 어우러져 흥겨운 느낌을 준다. 가수 홍진영이 지난해 1월 SBS 예능 프로그램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에서 선보인 노래 ‘사랑은 24시간’이다. 이 곡을 만든 이는 한국 최초 AI 작곡가 이봄. 2016년 세상에 나온 이봄은 지난해까지 약 30만곡을 작곡하고 이중 3만곡을 판매해 매출 6억원을 올렸다. K팝 기획사도 AI에 관심이 깊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소속된 하이브는 올해 초 AI 오디오 기업 슈퍼톤을 인수하고, 문화와 기술을 융합한 ‘프로젝트 L’을 진행 중이다. “AI가 하이브의 다음 핵심 전략”이라는 방시혁 의장의 판단에 따른 결과다. SM엔터테인먼트는 AI 아티스트 나이비스를 올해 정식으로 데뷔시킬 예정이다.
AI는 소설도 쓴다. 출판사 자음과모음의 임프린트 네오픽션은 작가 7명과 생성형 AI 챗 GPT가 집필한 소설집 ‘매니페스토’를 지난달 5일 출간했다. 챗GPT는 이 책 추천사에 “재능 있는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일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작가들이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서 제가 제공한 단어와 문장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러일으켰고, 작가들이 이를 발전시킴으로써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라고 썼다. 지난해 일본에선 AI를 이용한 소설이 SF소설 문학상 호시 신이치상 일반 부문에 출품돼 1차 심사를 통과하는 일도 있었다.
“AI 저작권 인정하자”는데… 권리자는 누구?
성큼 다가온 AI 창작시대에 창작자들이 느끼는 위기감도 커졌다. 이달 초 파업에 돌입한 미국작가조합은 처우 개선과 더불어 AI 사용제한을 영화·TV 제작자 연합에 요구하고 있다. 작가들이 쓴 대본을 AI 학습 훈련에 사용할 수 없게 하고, AI가 작성한 초안을 작가들에게 수정·보완하도록 지시할 수 없게 해달라는 것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도 지난 3월 “AI로 인한 창작생태계의 붕괴를 우려하는 회원들의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며 AI 대응 TFT를 발족했다. AI와 관련한 저작권 문제에 선제대응하는 팀이다. 업계 관계자는 “챗 GPT가 등장한 이후 AI 창작물에 대한 기존 창작자들의 저항이 더 격렬해지는 모양새”라고 귀띔했다. “AI가 인간 창작자를 대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미국과 영국에선 기존 저작물을 AI 학습 훈련에 사용한 업체들이 줄소송에 휘말렸다. 게티이미지가 ‘저작권자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저작물을 불법으로 사용했다’며 스태빌리티 AI 등을 상대로 낸 소송이 대표적이다. 각국 저작권법이 규정한 ‘공정 이용’(미국) 내지는 ‘공정 취급’(영국)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소송 향방이 갈릴 전망이다. 사정이 이러니 세계 곳곳에서 AI 관련 저작권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생성형 AI 개발 과정에서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사용하면 이를 공개토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AI 학습에 쓰이는 자료에 저작권 면책해주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2021년 발의됐다. AI가 학습하는 자료에 대해 “저작물에 표현된 사상이나 감정을 향유하지 않는 경우, 필요한 한도 안에서 저작물을 복제·전송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AI가 생성한 창작물을 저작물로 봐야 할지도 논쟁거리다. 현재 한국과 미국 등 전 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AI 창작물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AI 작곡가 이봄이 만든 ‘사랑은 24시간’ 등도 한음저협으로부터 저작권료를 받지 못하는 상태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2020년 AI 저작물을 인정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김찬동 한국저작권위원회 법제연구팀장은 지난 26일 열린 ‘2023 콘텐츠 산업포럼’에서 “AI 생성물의 저작권을 인정한다면, 저작권자가 AI 개발자인지, 프롬프트 엔지니어(생성형 AI에 명령어를 입력하는 사람)나 AI 자체가 될지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AI는 경쟁자 아닌 조력자”
AI를 경쟁자가 아닌 조력자로 보는 이들도 있다. 소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나의 돈 많은 고등학교 친구’ 등을 펴낸 송희구 작가는 ‘2023 콘텐츠 산업포럼’에서 “(AI는) 창작자가 가진 경험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준다. 가령 부산에 가본 적 없는 작가가 부산의 분위기나 지역 시민의 문화, 말투 등을 (AI로부터) 습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아름 한국콘텐츠진흥원 미래정책팀 책임연구원도 “AI 기술과 콘텐츠가 공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사용자가 AI를 활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거나 경제적 효율성을 얻는 등 AI 기술을 도구로써 활용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AI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인간적 창의성에 집중해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술이 대체하지 못하는 창작자가 되려면 독특한 문제나 화풍 등 자신만의 특징을 갖춰야 할 것”(송 작가)이라는 전망이다. 정병욱 음악평론가는 “AI가 인간을 대체 가능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면, 대중은 AI와 구분되는 인간의 작업에 더 가치를 둘 것”이라면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가상 현실 기술 등이 도입된 온라인 공연이 일시적으로 관심을 얻었으나 결국 오프라인 공연의 가치가 높아졌다. 이처럼 (AI 창작이 보편화할수록) 라이브 연주나 가창 등 AI와 구분되는 퍼포먼스를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