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와 복합 만성질환자 증가 등으로 5개 이상의 다제약물을 복용하는 노인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노인 환자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물 사용을 위해 환자의 예후를 살피고, 약제 복용력을 면밀히 평가하는 등 의사와 약사의 통합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정숙·백종헌 국민의힘 의원과 이용빈·서영석·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주최하고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가 주관한 ‘방문을 통한 지역사회 다제약물 관리의 의·약 협력방안 토론회’가 8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지난 2018년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대한약사회가 진행 중인 ‘다제약물 관리사업’은 만성질환환자 중에서 10종류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중복 복용과 부작용 등을 방지하고자 약사가 약물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서비스 대상자의 가정을 약사가 방문하거나 약국에 환자가 방문해 상담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며, 올해는 서울 도봉·강북구에서 지역 의사와 약사가 함께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 의·약사 협업’ 모형이 도입돼 시범운영 중이다.
이날 ‘노인 다약제 복용의 문제와 재택의료’ 주제로 발표한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다제약물 복용 환자 관리 강화를 위한 지역 의사와 약사의 협업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노인 환자는 만성적이고 퇴행적인 다발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즉 치료를 해도 조금씩 나빠질 수밖에 없는 특성 때문에 약을 줄이기가 어렵고, 복용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인 환자는 약물 복용 시 고려해야 할 점들이 많은데 의사가 약 관리까지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의사와 약사의 협업을 통한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다약제 관리로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의사와 약사의 다약제 관리 협업이 잘 이뤄지려면 연속성을 위해 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센티브 지급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전주시약사회에서 진행한 복약 관리 사업 결과 의료진과 약사, 간호사들 간의 정보 공유가 잘 이뤄질수록 다약제 환자 관리가 더 잘된다는 발표도 있다”며 “지역사회 의료시스템 완성을 위해서는 다직종 전문가들이 협업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의사·약사 협업 다제약물 관리사업으로 약물 관련 입원을 줄이고 잠재적인 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예방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지만, 아직 개선점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장선미 가천대 약학대학 교수는 “당뇨병, 심부전증, 과민성 대장증후군, 위·식도 역류병, 경추간판장애 등으로 34종의 약물을 복용하는 77세 노인 환자가 있었는데 사업을 통해 약을 28종으로 줄였다”며 “약을 줄임으로써 오히려 환자 상태가 호전됐고 복약순응도를 개선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했다.
이어 “2020년 8월 1차 시범사업 이후 2022년 3차 사업까지 다제약물 관리 상담을 받은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재입원 횟수, 응급실 이용 횟수 등을 비교했을 때 사업 참여자는 미참여자에 비해 사업 3개월 후 응급실 방문 위험이 37% 감소했으며, 재입원 위험은 18%, 응급실 방문 이용은 47%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업 효과를 더 극대화하려면 전문 직역 간 정보를 교류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플랫폼이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장 교수는 “전문가 집단 사이의 연계와 협력이 이뤄지려면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정보공유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가능하면 DUR(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처럼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조제 여부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형태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정부는 다제약물 상담 결과를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과 약사가 공유하는 정보시스템이 미비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며 실시간 투약정보를 확인하고 상담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지영 건보공단 만성질환관리실장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DUR 서비스를 활용해 심평원이 환자의 최신 투약정보를 건보공단에 제공하면 건보공단은 다제약물 상담결과를 심평원에 전달하고, 의료기관은 DUR을 통해 상담결과를 열람하는 방식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업을 확대하면서 생길 수 있는 직역 간 갈등 조정은 정부의 숙제로 남았다. 하태길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환자의 건강도 챙기고 약사의 전문성도 높인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직역 간의 역할이 불분명하면 갈등이 생길 수 있어 부담스러운 면도 있지만 의사와 약사, 간호사가 협력하는 모델이 잘 정립된다면 더 좋은 사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