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침수 피해를 겪은 반지하 주택을 대상으로 관악구청이 대피를 위한 개폐형 방범창을 설치했다. 하지만 거주민이 사용법을 몰라 무용지물이 될 우려가 있다.
지난해 8월 집중호우로 인해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거주하던 일가족이 숨졌다. 이후 관악구청은 침수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반지하 주택을 대상으로 침수 방지시설과 개폐형 방범창을 장마철 전까지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5월 취재 당시 개폐형 방범창 설치 가구는 침수 이력이 있는 4816가구 중 22가구에 불과했다. 개폐형 방범창이 설치된 반지하 주택의 거주민마저도 그 사용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이보영씨(34·여)는 베트남에서 온 세 아이의 엄마다. 이씨는 지난해 8월8일 폭우로 침수 피해를 겪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3시였다. 거실 소파에서 잠든 이씨는 무릎까지 물이 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씨는 급히 방으로 들어가 남편과 세 아이를 깨웠다. 양동이로 물을 퍼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물은 순식간에 여섯 살 난 아이의 명치까지 차올랐다. 이씨 일가족은 세간살이를 챙길 여유도 없이 집에서 탈출했다.
간신히 집에서 탈출했을 때 집 앞 거리는 이미 물바다였다. 이씨는 “동이 틀 때까지 건물 2층 계단에 쪼그려 앉아 세 아이를 달랬다.”며 침수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조금만 늦었다면 문이 안 열려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불과 30분 만에 천장까지 물이 찼기 때문이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변기와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해 집은 쑥대밭이 됐다. 젖은 벽지와 장판을 떼어내 다시 도배하고 망가진 가구와 가전제품은 새로 사야 했다.
지난해 12월 관악구청에서 이씨의 집에 개폐형 방범창을 설치해 줬다. 개폐형 방범창을 설치하기 전에는 방범창이 고정돼 있어 창문으로는 탈출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방범창이 열려 비상시에 창문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기자가 방범창 사용을 요청했을 때 이씨는 방범창을 5분여간 열지 못했다. 비상시 탈출구가 되어야 할 방범창은 온갖 주방용품, 양동이들로 가로막혀 있었다. 이 짐을 옮기는 데도 시간이 소요됐다. 더 큰 문제는 이씨가 개폐형 방범창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게 왜 안 열리지?”, “이 버튼을 누르면 된다고 했는데….”라고 말하며 우왕좌왕했다. 이씨가 겨우 방범창을 열었다. 설치한 지 겨우 6개월밖에 안 된 방범창은 계속해서 삐걱대는 소리를 냈다. 이씨는 “비가 쏟아졌을 때 이러면 어쩌죠.”라며 당황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관악구에는 서울(20만849가구)에서 가장 많은 반지하 가구(2만113가구)가 살고 있다. 특히 사망자가 발생한 신림동은 저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 침수 우려가 높은 지역이다. 개폐 가능한 방범창이 설치돼 있어도 거주민이 사용법을 모르거나 하자가 있다면 이는 무용지물이 된다. 이씨의 남편은 “올여름에 개폐형 방범창이 제대로 작동되길 바랄 뿐이다.”라며 걱정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관악구청에서 개폐형 방범창을 설치할 때는 구청 주무관이 동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공자들이 방범창을 설치한 후 거주민에게 구두로 사용법을 안내할 뿐이었다. 이렇게 구두로만 설명한다면 노인, 외국인 거주민들은 사용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개폐형 방범창 사용법을 모르는 주민이 있었다는 지적에 김 주무관은 “다시 한번 사용법을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방범창이 삐걱댔고 5분이 걸려서야 제대로 작동됐다고 전하자 “6월 안으로 하자 점검을 하겠다.”고 했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지난 2월 ‘2023 달라지는 관악 생활’을 발표하며 “반지하 주택에 개폐형 방범창 설치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악구에서 개폐형 방범창 설치한 가구는 22가구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해 침수 피해를 겪은 가구(4816) 중 고작 0.004%만이 방범창을 지원받은 것이다. 이에 구청 관계자는 “관악구청에서 지난해 12월 신림동의 주거 취약 계층 22가구에 개폐형 방범창을 우선 설치했고, 장마철이 오기 전 600가구에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개폐형 방범창 설치 예정인 관악구 반지하 주민들은 구청에서 대략적인 일정도 전달받지 못했다.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 사는 김춘식(66·가명)씨는 지난해 침수 피해를 겪었다. 김씨는 “지난 4월 구청에서 개방형 방범창을 설치해 준다고 집에 찾아왔었는데 아직….”이라며 연락을 기다릴 뿐이었다. 김씨의 집에는 여전히 고정형 방범창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한편 기상학자들은 올여름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해 폭염과 폭우가 우려된다고 입을 모아 경고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엘니뇨가 찾아오면 통상적으로 7월부터 강수량이 증가한다.
류효림 쿠키청년기자 andoctob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