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상생 금융 동참 촉구에 제2금융권의 ‘울며 겨자먹기’식 호응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우리카드, 13일 한화생명에 이어 내주에는 신한카드도 상생 금융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금융회사의 불만이 커지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자율적 판단에 따른 참여라고 선을 긋고 “강권이나 요구는 아니다”고 달래기에 나섰다.
한화생명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본사 여의도63 빌딩에서 ‘상생친구 협약식’을 열고 보험업권 최초 상생금융 1호 금융상품 ‘2030 목돈마련 디딤돌 저축보험(가칭)’을 약 1~2개월 내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이 원장과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이사,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 등이 참석했다.한화생명의 2030 목돈마련 디딤돌 저축보험은 5년 만기 저축보험이다. 가입 대상은 가구소득 중위 200% 이하인 만 20~39세까지로 은행의 ‘청년도약계좌’ 대비 가입 대상을 확대했다. 보장금리는 5년간 5%가 기본이다. 보험기간 내 결혼 또는 출산 시 납입금액의 일정률을 보너스로 지급해,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준다는 컨셉으로 설계됐다.
“상생 고민·노력 금융권 전반 확산하길” 재차 강조
이 원장의 상생금융 촉구 행보는 올해 초부터 시작했다. 이 원장은 지난 2월에는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까지 4대 시중은행을 모두 방문했다. BNK부산은행, DGB대구은행 등 지방은행도 찾았다. 이 원장이 방문할 때마다 은행권은 금리 혜택 등 ‘상생금융 보따리’를 선물로 안겼다.
이 원장은 이날 어려운 시기일수록 금융회사들은 스스로만을 챙기기보다 함께 상생하고,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상생금융을 촉구했다.
이 원장은 “최근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국민 보호망으로서 보험산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한화생명이 발표하는 상생 보험상품 및 취약계층 지원 방안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면서 “다른 수출 산업 등과 달리 금융산업은 결코 혼자 성장할 수 없기에 국민과 국가 경제와 함께 발전해 나가야 한다. 한화생명의 상생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계속해서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신호탄 쏘아 올린 우리카드…대환대출 플랫폼 입점도 잇따라
카드 업계에서는 우리카드가 지난달 29일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 다음 타자는 신한카드다. 우리카드는 카드 업계 최초로 2200억원 규모로 소상공인 등 저소득층 신규 대출, 연체 차주 저리 대환대출 및 채무감면 등을 지원하는 내용의 상생 금융 방안을 발표했다.
고금리에 따른 자금 조달 비용 증가, 연체율 상승에 따른 대손충당금 확대 등으로 어려운 업황 속에서 금융당국 ‘코드 맞추기’에 나선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향한 업계 불만이 컸다.
이후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은 지난 7일 우리카드보다 규모가 배로 큰 6000억원 규모의 상생 금융안을 내놨다. △소외계층 신규대출 △영세사업자 금융지원 △상용차주 금융지원 △취약차주 채무정상화 프로그램 △소상공인 마케팅지원이 주 내용이다.
대환대출 플랫폼에 합류하는 카드사도 늘어나는 추세다. 대환대출 플랫폼은 차주 부담을 덜기 위해 금융당국 주도로 지난 5월31일 출시한 서비스다. 신한카드, KB국민카드가 토스, 카카오페이, 핀다 등 대환대출 플랫폼에 입점한다고 밝혔다. 롯데카드는 3분기 중 카카오페이에 입점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들라면 만들 수는 있는데” 착잡한 보험업계
다른 제2금융권 회사들은 착잡한 심경이다. A 보험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이번에 한화생명이 상생금융 상품을 내놓으면서 교보생명, 삼성생명이 위기감을 느끼지 않겠나”라고 했다. B 보험사 관계자는 “저축성 보험을 팔 수 있는 생명보험과 다르게 손해보험의 경우는 (저축성 보험이) 주력 상품도 아니고, 손해보험 상품 특성상 특정 계층을 타겟하기 어려워 상품 개발에 한계가 있다”면서 “대출금리 인하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이어 “아무래도 이 원장이 총선 출마하기 전까지는 계속 압박이 이어지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막상 당국 압박으로 취약계층 대상 보험 상품을 개발·출시해도 수요가 적은 경우가 허다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상생 금융 상품을 출시하라고 당국이 독려한 적이 있었다. 보험사 몇 군데에서 어렵사리 위험률 산출해 상품을 내놨는데 흥행에 실패했다. 취약계층을 돕자는 취지는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 수요가 없어 의미 없는 일이 돼버린 셈”이라며 “이런 이유로 보험사들도 일단 한화생명에서 낸 상품의 시장 반응을 보고 동참 여부를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 원장도 제2금융권에서 느끼는 부담을 인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날 이 원장은 협약식 이후 기자들과 만나 “시중은행과는 달리 비은행이라든가 기타 업권은 일률적으로 상생금융을 부탁하거나 요구하기에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소비자의 저변을 확대하고 중장기적으로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상생금액 노력은 시장 원리에 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도 밝혔다.
이어 “각 사의 마케팅, 상품 정책상 수익적 측면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회사가 자율적으로 이런 노력을 해 주시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며 “다만 그럴 여력이 없거나, 내지는 회사 운영상 적절치 않은 회사에까지 강권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