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는 14년간 수천억, 수조원이 넘는 수익을 포기하며 수수료를 계속 낮춰줬는데 그만한 지원이 어딨습니까. 영세 가맹점 어려운 상황, 정부 정책을 감안해 대승적 차원에서 우리도 그동안 꾹 참았습니다. 이제 와서 가맹점에 대한 관리와 지원이 부족했다니, 이게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립니까”
카드사 노동자들이 수수료 인하, 조달비용 상승, 대손비용 증가, 페이 수수료 부과 4중고로 업계가 고사 직전이라며 결제 수수료 인하를 더는 감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관치금융이 도를 넘고 있다고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7개 전업카드사(신한·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비씨카드) 노조가 모인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카드노조)는 1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매번 선거 때마다 정치권 표퓰리즘으로 카드수수료는 지난 14년간 총 4차례 인하를 거듭해왔다”며 “카드사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적격비용 재산정제도는 폐지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날 신한카드에 방문해 ‘카드사들이 그동안 가맹점에 대한 관리와 지원에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는 발언을 두고서는 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금융당국 상생금융 촉진 요구에 우리카드, 현대카드, 롯데카드에 이어 신한카드에서도 4100억원 상당의 상생금융 방안을 잇따라 내놨다. 현 정부가 금융사 목을 비틀며 자유주의나 시장경제와 상반되는 행태를 보인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다. 카드노조는 제도개선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시에는 2년 전 유예했던 총파업이 재개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3년 마다 논란 반복…적격비용 재산정제도가 뭐길래
정부는 지난 2012년부터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3년마다 적격비용을 재산정해 중소·영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해 왔다. 가장 최근인 2021년 말 연매출 30억원 이하 우대 가맹점의 카드수수료는 0.8~1.6%에서 0.5~1.5% 수준까지 내려간 상태다.당국은 3분기 중 카드 수수료 적격비용 제도 개선안 논의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국이 수수료율 재산정 주기를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자 카드노조가 반발한 것이다.
카드노조는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가 수수료 인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본다. 제도 폐지를 계속 요구했다.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 소상공인 표를 의식, 수수료율 인하 공약을 내놓고 당국도 발맞출 수밖에 없는 비합리적인 제도라는 입장이다. 그 부담은 오롯이 카드사 노동자가 져야 한다.
수수료 인하는 각종 혜택 축소로도 이어진다. 카드사들의 카드수수료로 인한 수익은 이미 손실구간에 진입했다. 카드 혜택이 줄고 더 나아가 ‘혜자카드’로 불리는 알짜 혜택 카드들이 잇따라 단종됐다. 카드론·현금서비스 등 사업이나 해외 진출 등 다른 활로를 찾아 적자를 메꾸고 있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실제로 카드사가 수익성 방어 전략을 취하기 위해 △저신용 고객의 장단기 대출 금융 한도를 축소하고 △신용카드 한도와 혜택을 지속 축소·폐지하고 있다는 발언이 있었다.
지난 2021년 금융위원회는 악순환 고리 끊고 카드업계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해주겠다면서 카드수수료 재산정 제도 개선TF를 운영키로 약속했다. 그러나 한 차례 회의 이후, 정권이 바뀐 뒤에는 제대로 논의가 이뤄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지적이다.
카드 이용액 늘었는데 수수료는 감소
카드노조는 ‘영세 중소가맹점 보호’라는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 정책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는 입장이다. 수수료를 내려도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토로도 터져 나왔다.
카드사들은 영세, 중소상공인에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한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280만 가맹점 중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가맹점주는 96%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92%에 해당하는 204만 가맹점은 부가세 매출세액공제를 통해 0.5%를 환급받는 실정이다.
정종우 사무금융노조 하나외환카드 지부장은 “여신협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가운데 카드 수수료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답변이 2.6%였다. 실질적 어려움은 고금리, 배달앱 횡포, 입대료, 프랜차이즈 가맹 수수료라는 답변이 대부분”이라면서 “연매출 30억까지 우대 수수료를 적용 받는다. 월 매출 2억5000만원인 자영업자가 우대를 받아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카드사가 처한 환경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부터 진행된 금리 인상과 금융시장 불안으로 카드사들 조달 금리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연체율도 급등하고 있다. 신용, 체크카드 이용액이 전년보다 12.1% 증가했음에도 카드수수료는 오히려 4% 가량 줄어든 것은 카드사들이 처한 역설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창립 41년이 된 비씨카드가 올해 1분기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것도 업계에서는 위기 징조로 인식하고 있다.
“애플페이 허용, 이렇게 될 줄 몰랐나” 금융위 책임 묻는 목소리도
카드노조는 ‘애플페이’가 불러온 나비효과에 대한 금융위 책임도 물었다.올해 초 금융위는 결제 수수료를 카드사가 전면 부담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애플페이를 승인했다. 이후 지난 8년간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았던 삼성페이가 유료화를 검토 중이다. 삼성페이가 수수료를 부과하면 카드사들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연간 1014억원으로 추산된다.
네이버, 카카오페이에까지 유료화 바람이 번지지 않을지 우려도 나온다. 금융위가 수수료 문제에 대해서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앞으로 일어날 파급 효과들에 대해서 제대로 예측했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신원철 사무금융노조 KB국민카드 지부장은 “애플페이 수수료 부과 이후 카드사 입장에서는 생돈 나가는 일이 생긴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내부적으로 마케팅비를 다 줄이고 하다못해 직원들 복리후생비도 줄이는 상황”이라며 “금융위에서 카드사 경영 위기라던가 이런 파급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승인해 준 게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김준영 사무금융노조 신한카드지부 지부장은 은행권을 시작으로 제2금융권에 번지고 있는 당국의 상생금융 요구에 대해 “금융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다고 본다”면서 “금융회사는 리스크 관리가 생명이다. 금융회사가 망하면 사회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리스크 관리는 관심도 없이 오로지 금융을 정치에 동원하는 행동이 안타깝고 정말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