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이 일어난 서울 한복판에 아파트 한 채만 덩그러니 남는다면 그곳은 낙원일까 지옥일까. 대다수의 황궁아파트 주민들에게 그곳은 낙원이다. 이들은 말한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면 다 죽는다”고. “아파트는 주민의 것”을 외치며 외부인을 내쫓는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기발한 상상에서 출발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는 현실과 면밀하게 맞닿은 작품이다. 재난 상황에 놓인 한국인이 할 법한 생각들과 말들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펼쳐진다.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풍자를 잊지 않는다. 아파트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재난물이라는 점에서 tvN ‘해피니스’, 넷플릭스 ‘스위트홈’이나 영화 ‘#살아있다’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다른 노선을 택하며 차별화를 꾀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이라는 틀을 빌려 사람을 들여다보는 블랙 코미디 영화다. 사건이나 배경에 집중하기보다는 사람에 주목해 현실을 조용히, 신랄하게 꼬집는다.
비극적인 외부상황과 달리 황궁아파트는 주민들의 낙원처럼 그려진다. 외부인을 몰아낸 그들에겐 거리낄 게 없다. 평소 자신들을 무시하던 부촌 주민이 신세를 지러 찾아오자 이들은 더욱 득의양양해진다. 난세에 영웅으로 떠오른 영탁(이병헌)을 보며 중립을 지키던 민성(박서준)은 변해간다. 이타적인 명화(박보영)는 남편인 민성의 변화가 달갑지 않다. 주민 대표단은 생활수칙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사회를 만들어간다. 배급 규칙 제정, 방범대 조직, 시설 재정비, 의료대 마련 등 체계를 갖출수록 아파트는 병든다. “우리는 모두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단꿈에 젖어, 이들은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새에 마음이 병든다. 주민들이 외부인에게 갖는 선민의식은 평소 가졌던 콤플렉스를 비춘다. 연극처럼 꾸며진 이상향과 외부인의 죽음에 무감각해진 집단주의를 그리자 관객이 느끼는 아이러니함은 배가된다.
영화에는 절대 선이나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을 선악구도로 구분하기보다는 이타와 이기 영역에서 바라본다. 극한상황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이타적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재난 상황에서 내가 내릴 선택을 생각하게 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를 지향하지만 현실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있다. 그 덕에 공감하고 이입할 여지가 열려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재난 상황임에도 지역구 의원이라며 떵떵대는 인물이 등장할 때나, 주민들을 자가와 임대로 구분하자는 의견이 나올 때면 헛웃음이 지어진다. 구시렁거리는 대사마저 일상적이다 보니 씁쓸한 웃음이 새 나온다.
작품에 힘을 싣는 건 엄태화 감독의 연출과 이병헌의 걸출한 연기다. 각도를 완전히 뒤튼 촬영 기법부터 조명을 활용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연출이 감탄을 자아낸다. 여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이병헌이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영탁의 변화를 표현한다. 연기가 아닌 영탁이 돼 호흡한다. 웃음부터 긴장감까지, 장면이 추구하는 다양한 감정선을 표현한다. 박서준은 기존 작품에서 볼 수 없던 과격한 얼굴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박보영은 큰 눈망울로 캐릭터를 분명히 보여준다. 박지후와 김도윤 역시 도드라지는 활약을 펼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유희거리로 볼 만한 오락영화는 아니다. 심오하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사회를 비추는 블랙 코미디다. “우리가 뭘 하든 죄책감이나 자부심 가질 필요 없어. 당연한 일을 하는 거야.” 영탁의 말에는 우리로 포장된 주민들의 그릇된 연대가 숨어있다. 극 전반을 지배하는 기괴한 활기와 역동성은 주민들의 비정상성을 보여준다. 견고한 만듦새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엄태화 감독의 저력이 돋보인다.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세간 기대와는 다르지만, 이 기대를 벗어나서 더욱 반갑다. 오는 9일 개봉. 상영시간 130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