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최대 왕릉, 조류서식도 수도권 최대
- 참매 등 주·야행성 맹금류 10여 종 번식 및 서식
- 왕릉의 밤은 문명의 소리와 빛으로부터 차단
- 왕릉 주변 개발 가속화로 새들 모여들어
빛공해 1위국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서울과 수도권 도심은 늦은 밤에도 대낮처럼 환하다. 도심에 위치한 왕릉은 그나마 빛과 소리공해에서 벗어나 동식물이 안정되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이다. 구리시에 위치한 조선최대 왕릉 동구릉(東九陵)은 콘크리트 숲 속에서 동식물이 살아가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동구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면적도 넓지만 노송과 굵은 참나무 군락이 적절히 섞여있는 혼효림(混淆林, mixed forest)이어서 맹금류가 새끼를 키우며 살아가기 위한 공간이 충분하다. 왕릉 숲 사이를 끼고 흐르는 아담한 계곡과 숲 속에는 그들의 먹잇감인 작은 포유류와 곤충, 양서 파충류들도 넉넉하다. 또한 곳곳에 통제구역이 많아 이들이 안심하고 새끼를 키우고 쉴만한 장소 역시 넉넉하다.
특히 동구릉 주변은 다산신도시 등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야생 조류의 보금자리가 크게 줄어드는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주변 개발로 인해 전통 숲이 잘 보존된 왕릉으로 새들이 몰려들고 있다. 동구릉에는 야행성 조류 뿐 아니라 참매와 붉은배새매, 긴꼬리딱새(삼광조) 등 멸종위기종을 비롯해 딱따구리류와 큰유리새, 물까치 등 다양한 텃새와 나그네새들이 아름다운 소리로 방문객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21년도 봄· 여름새 조사에 이어 야행성 맹금류 조사
쿠키뉴스 생태조사팀은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와 함께 지난 5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 3개월간 동구릉의 여름새에 관해 생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중에서도 야행성 맹금류의 번식과 서식에 관해 집중조사를 했다. 그 결과 솔부엉이 3쌍과 소쩍새 7쌍이 왕릉에서 새끼를 키우고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 지난봄과 겨울에 발견한 수리부엉이와 큰소쩍새까지 합하면 총 4종의 야행성 맹금류가 동구릉에서 살아가거나 거쳐 간 새들이다. 올빼미는 동구릉의 생태 여건 상 서식이 예상되어 추가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 외에도 주행성(晝行性, diurnal habit) 맹금류로는 참매 한 쌍과 붉은배새매 3쌍의 서식을 확인했고 말똥가리와 황조롱이, 새매 등이 관찰되어 총 10여 종의 주·야행성 맹금류를 확인했다. 우리나라 올빼미과 10종 중 수리부엉이, 올빼미, 솔부엉이, 소쩍새, 큰소쩍새, 칡부엉이, 쇠부엉이 7종은 천연기념물(324호) 및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하고 있다. 주행성 맹금류도 대부분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갖고 있는 맹금류(猛禽類)는 조류의 먹이사슬 중에서 최강자로 군림한다. 검독수리와 매, 부엉이, 올빼미 등이 속한다. 맹금류는 쥐, 작은 새, 토끼, 꿩, 곤충 등을 잡아먹는 육식성 조류로 소리 없이 비행해 발톱의 강한 악력으로 먹이를 낚아챈다. 솔부엉이, 소쩍새 등 야행성 맹금류들은 특히 청각이 발달하고 비행 시 발생하는 날개소음을 최소한으로 줄여 스텔스전투기와 같이 조용히 먹이에 접근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쿠키뉴스 생태조사팀은 지난 2021년에도 4개월(4월~7월) 간 동구릉 내 조류 서식 현황 및 번식지 조사를 통해 천연기념물 6종과 멸종위기종 2급 5종, 번식 확인 종 33종, 둥지 확인 종 20종, 번식지 미확인 종 등 총 67종의 서식과 번식 상태를 확인해 발표한바 있다.
동구릉은 왕가의 무덤 한 개가 늘어날 때마다 이름이 바뀌며 동오릉(東五陵), 동칠릉(東七陵)으로 불려오다가 효명세자가 안치된 이후로 더 이상 이곳에 새로 생기는 능이 없는 채로 조선왕조가 문을 닫으면서 동구릉으로 이름이 굳었다.
동구릉 측의 협조를 받아 5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갔다. 주로 동구릉의 휴관일인 월요일에 집중적으로 조사를 했다. 일상에 쫓기듯 생활하다 찾은 왕의 숲은 담장하나를 사이에 두고 속세의 소음에서 벗어나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했다. 주간에 관찰한 새들은 2년 전 조사 시와 특별한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조사팀은 능안이 워낙 조용한데다가 월요일에는 어쩌다 마주치는 직원들 외에는 사람들이 없어서 새소리도 틈틈이 녹음했다. 주간의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과는 달리 밤이 되자 능안 여기저기서 소쩍새 소리가 많이 들렸다. 10년 넘게 동구릉에서 생태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 서정화(60·이하 서 대표) 대표는 “소쩍새가 이렇게 많이 우는 건 처음이다. 역시 숲이 울창하고 서식여건이 좋아 야행성 맹금류가 많이 깃든 거 같다”고 말했다.
왕릉 숲길에서 솔부엉이를 만나다.
주야간 생태조사를 시작하고 약 보름이 지난 6월 2일 동구릉 매표소에서 인근의 숲 속에서 천연기념물 솔부엉이가 날아가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조사팀은 재빠르게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솔부엉이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숲길 노송의 중간 쯤 뚫려있는 나무 구멍(수동·樹洞)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솔부엉이 어미가 구멍을 빠져나간 후 살펴보았더니 하얀 알이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솔부엉이 산란터다.
서 대표는 “알을 낳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고 부화해서 이소(離巢)까지 하려면 한 달은 넘게 걸릴 것 같다. 조심스럽게 지켜보자”고 했다. 이후 조사팀은 솔부엉이가 새끼들을 키우는데 방해가 안 되도록 최소한의 기록만 남기면서 조사를 이어갔다.
솔부엉이(천연기념물 제324-3호)는 올빼미목 올빼미과에 속한 야행성 맹금류이다. 주로 자연적으로 생긴 나무 구멍이나 딱따구리가 뚫어 놓은 구멍을 사용하며 한 배에 3마리의 새끼를 키운다. 포란기는 28일이며 육추는 4주이다. 대부분의 최상위 포식자 맹금류처럼 단독으로 생활하나, 작은 무리를 이루기도 한다. 먹이는 다른 맹금류처럼 쥐나 새를 먹이로 하지만 박쥐와 곤충도 사냥한다.
3개의 알이 모두 부화하고 본격적으로 먹이활동을 시작하자 솔부엉이 부모는 수컷, 암컷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먹이를 물어다 날랐다. 어떨 때는 동시에 암·수컷이 먹이를 물고와 한 마리는 둥지 밖에서 기다리는 풍경도 목격되었다. 그래도 새끼들은 연신 배가 고픈지 둥지 안에서 먹이를 달라며 보채는 소리가 들린다. 부모 새가 물어다주는 먹이가 부족하면 먼저 태어난 새끼가 동생을 잡아먹는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계다.
하지만 동구릉에서 관찰한 솔부엉이 새끼들은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인지 장마가 잠시 주춤했던 지난 7월 23일 저녁, 차례대로 3마리 모두 둥지를 벗어나 인근의 나뭇가지에 안착했다. 새끼들은 둥지를 벗어나서도 한동안은 부모새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먹으며 성장하다 자신의 영역을 찾아 독립했다.
이번 생태조사에 참여한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 연혜주(51) 씨는 “평소 야생조류에 관심이 많아 새들을 관찰하고 조사하는 작업에 참여했다.”면서 “특히 야행성 맹금류는 보기 힘든데 생각보다 왕릉에서 소쩍새와 솔부엉이 등 귀한 새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생태를 지켜 볼 수 있어서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이번 조사를 통해 도심의 숲 속에서 무려 10여 쌍의 야행성 맹금류가 번식하고 있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 도심에서 왕릉 숲이 건강한 생태계 유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특히 동구릉은 오래된 수목이 잘 보존되어 있고 빛이나 소음, 사람들을 피해 야행성 맹금류가 새끼들을 키우고 살아가기에 좋은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리=글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사진=곽경근· 서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