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 재작년에는 장마통에 집 앞 축대가 무너져 다시 쌓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일이 손에 안 잡혀 기상 뉴스만 보다가,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가 서울에 살 때도 이렇게 태풍에 예민했었나?”
아내 왈, “나는 그때도 관심이 많았는데 당신은 영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더라.” 그러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처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잖아.”
“다른 사람의 처지에는 관심이 없다.”
“항상 자기 말만 옳다고 한다.”
“남의 말은 잘 안 듣는다.”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화를 낸다.”
“자기 말에 동의할 때까지 끝까지 얘기한다.”
아내가 요즘 나를 묘사할 때 자주 쓰는 표현들이다.
아내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나에게 맺힌 게 많은 모양이다. 그렇잖으면 나를 저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을 텐데’라고 생각한다.
아내 말대로라면 나는 자기밖에 모르고 고집불통인 꼴통 중에서도 상 꼴통이 아닌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모습이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어쩌다가 나와 가장 친한 사람으로부터 이런 소리까지 듣게 되었을까.
아내와의 소통에 장애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2~3년 전쯤이다. 그전까지는 아내가 내 의견을 비교적 잘 수용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말에 다른 의견을 내기 시작했고 점점 그 빈도가 높아지더니 요즘은 내 말에 온전히 찬동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서로 잘 알고 지내는 내 친구의 부인은 “아내가 내 의견을 수용하는 데 한계에 이른 것 같다”라는 취지로 해석했다.
집안일로 그저께 서울에 갔다가 어젯밤 늦게 내려왔다. 서울에 있는 동안 아내, 여동생과 함께 식구들 간의 대화 방식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기에 옮겨 적는다. 특히 가족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나이 든 남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이니 새겨들으면 좋을 듯하다.
우선 식구들이 내 대화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처음에 조용조용 얘기할 때는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런데 어떤 순간 내 목소리가 커지고 표현방식이 거칠어지면 그때부터 나와 얘기하기 싫어진다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나의 큰 목소리와 거친 표현이 대화 상대방에게 위협적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아니면 위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더는 같이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은 상태를 초래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그동안 어머니, 아내, 여동생, 아들로부터 이에 대한 지적을 계속 받아왔다. 하지만 그동안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얘야, 사람들과 얘기할 때 조용조용히 해라.”(어머니)
“제발, 화내지 말아요”(아내)
“왜 나한테 화를 내?”(여동생) 등등.
나는 그런 지적을 받을 때마다, “내가 화를 내거나 분노하는 것은, 대화 상대방이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제도나 거짓말하는 사람들인데 왜 대화 상대방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이번에 대화 방식에 관해 식구들과 얘기하면서 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화내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화내는 것을 옆에서 듣거나 보는 사람은 유쾌하지 않다.
아니 유쾌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쾌하다. 당연하지 않은가. 더욱이 화내는 사람이 나이 많은 남자라면 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느끼는 불편함은 논리 이전의 문제다, 논리적으로 따지면야 상대방의 분노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지만 사람의 감정이 어디 논리를 따져서 기분이 좋고 나쁘던가. 그냥 느껴지는 것이지.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에 보면 여성의 무의식을 묘사한 장면이 있다.
조르바가 길을 걷는데 저 앞에서 4~5명의 소녀가 즐겁게 이야기하며 편하게 오다가, 낯선 남자(조르바)를 보자 갑자기 삼각형의 전투대형을 형성하고 낯선 남자의 행동을 긴장된 시선으로 주시하면서 지나간다. 외부 위협에 대해 여성들은 다르게 느끼는 모양이다.
거친 언사에 대해 대화 상대방이 느끼는 위협이나 대화 의지의 상실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특히 대화 상대방이 여성이라면 이런 느낌이 훨씬 증폭될 것이고.
그리고 나잇살이나 먹어서 자신의 감정이나 분노를 속으로 삭이지 못하고 옆에 있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외부로 표출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 꼴이 참 우습다.
그런 우스운 사람이 바로 나였다니. 부끄럽다. 아내와의 소통 장애도 내가 자주 화내고 분노한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많아진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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