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획사를 운영하는 A씨는 지난 4월 소속 가수로부터 전속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연예 활동을 위한 소속사의 지원이 부족해 신뢰 관계가 망가졌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가수가 제기한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14일 서울 신수동 MPMG에서 열린 ‘2023 대중음악산업 발전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한 A씨는 “전속계약 위반 여부는 본안 소송에서 따지되 가수가 활동할 수 있도록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다는 게 법원 판결이었다. 회사가 입은 피해는 막대한데 가수는 이미 다른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활동 중”이라며 억울해했다.
그룹 피프티 피프티와 소속사 어트랙트 간 전속계약 분쟁, 이른바 ‘피프티 사태’를 계기로 표준전속계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 마련한 표준전속계약서가 연예인 권리를 보장하는 데 치우쳤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중소 기획사를 보호하기 위한 대중문화예술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지난달 밝혔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도 비슷한 시기 여러 연예 제작자 단체를 만나 탬퍼링(전속계약 기간 중 사전 접촉) 행위 제재 방안을 논의했다.
전속계약 기간 중 외부인과 기존 계약 파기 및 새 계약을 논의하는 탬퍼링은 계약 위반에 해당한다. 문제는 탬퍼링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A씨는 “소속 가수에 사전 접촉한 정황이 뚜렷하고 지인들로부터 제보도 많이 받았으나 물증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룹 엑소 멤버 첸·백현·시우민이 SM엔터테인먼트에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했을 때도 탬퍼링 의혹이 불거졌다. SM엔터테인먼트 측은 외부 세력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면서다. 외부 세력으로 지목된 래퍼 MC몽은 “평범한 교류의 일환으로 만난 자리에서 후배들을 위로했을 뿐, 불법행위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일단 소속 연예인과 법적 분쟁이 벌어지면 기획사가 불리하다는 성토도 쏟아졌다. ① 기획사 규모가 작을수록 연예인의 정산서 문제 제기를 방어하기 어렵고 ② 소속 연예인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주지 못하면 ‘연예 활동 지원이 부족하다’며 소송을 걸어온다는 게 중소기획사 관계자들 고충이다. 피프티 피프티 역시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을 당시, 소속사가 정산서 제공 의무를 지키지 않았고 활동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음악 레이블을 운영하는 B씨는 “아티스트 활동에 드는 비용을 일일이 영수증 처리해 법원에 제출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방송 하나를 잡는 데도 홍보비용이 든다. 그런데 아티스트는 이 비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누락된 자료가 생기면 법정 싸움에서 불리해지고 대중은 회사에 문제가 많은 것으로 인식한다”고 털어놨다.
A씨는 “가수가 무대 의상을 명품으로 마련해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해서 들어주지 못하면 회사의 지원이 부족해 신뢰 관계가 파탄났다고 주장한다. 회사가 전속계약을 위반했다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도 신뢰가 무너졌다고 하니 억울하다”고 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회장을 맡은 윤동환 엠와이뮤직 대표는 “가수뿐 아니라 기획사에게도 이미지는 중요하다. 소속 가수와 분쟁이 벌어지면 다른 가수들과도 껄끄러워지거나 새로운 가수를 영입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