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와 평화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정치, 사회적으로 어울리기 힘든 사람들이 많은 접경지대를 녹지로 만들어 평화적인 시간을 유지하고 있죠. DMZ는 한 가지가 다릅니다. 중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들과 달리, DMZ는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끝을 기다리는 곳이에요.”
눈가엔 웃음기가 있었지만, 말투는 심각했다. ‘독일처럼 갑작스럽게 통일이 되면 DMZ의 가치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생태학자를 움직이게 했다. 평화의 상징인 DMZ를 살리는 일이 군사적 긴장감을 완화하고 침체한 경기 북부 경제를 살리는 열쇠라고 생각한 정책학자도 힘을 보탰다. 미지의 땅에 예술을 접목해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겠다며 예술가도 팔 걷어붙였다. “평화보다 더 큰 국익은 없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까지 가세했다. 학술·예술·스포츠 등 다양한 교류 활동을 통해 ‘더 큰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로 ‘DMZ 오픈 페스티벌’이 기획된 배경이다.
70여년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우수한 생태 보고이자 지속 가능한 가치를 지닌 땅, DMZ. 생태학자, 정책학자, 피아니스트가 아픈 역사를 간직한 땅에 판을 벌였다. ‘열린 DMZ, 더 큰 평화’라는 주제로 지난 5월부터 열리고 있는 ‘DMZ 오픈 페스티벌’이다. 임미정 한세대 예술학부 교수가 총감독을 맡고,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임미정 교수, 최재천 교수, 윤덕룡 KIEP 전 선임연구위원을 만나 DMZ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DMZ의 가치, 지속 가능한 성장 비전을 담다
올해 개최된 ‘DMZ 오픈 페스티벌’은 한반도 생태·평화에 대한 논의의 장이자 놀이의 장으로 무대가 확대됐다. 시민 참여도 늘렸다. 임미정 교수는 지난 5월 DMZ 평화 걷기와 오는 10월 평화 마라톤을 언급하며 “누가 DMZ에서 걷고 뛰어볼 생각을 하겠나”라고 말했다. DMZ 특성상 행사를 여는 일이 다른 장소보다 10배는 힘들다. 하지만 임 교수는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DMZ를 오픈한다는 의미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위한 논의의 장인 ‘에코피스 포럼’은 ‘DMZ 포럼’에서 이름을 바꾸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평화의 의미를 정치·안보 차원을 넘어 생태와 환경으로 확장하는 그린 데탕트(녹색 화해협력)를 이어가면서도 ‘생태·환경’에 더 무게추를 옮겼다. 생태(에코)와 평화(피스) 포럼이란 이름에서 지향점을 엿볼 수 있다.
‘생태’ 부문을 맡은 최재천 교수는 “기후 변화 등으로 ‘환경’은 최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중요 이슈”라며 “기후 변화와 생물의 다양성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DMZ는 이전보다 더 소중한 땅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이 공간을 보존하지 못한다면 세계인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생태의 보고인 DMZ를 지켜야 할 의무를 갖게 된 것이나 다름없고, ‘DMZ 오픈 페스티벌’도 그 연장선이란 설명이다.
‘평화’ 부문도 포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특히 이번 포럼에는 독일 등 유럽연합(EU) 국가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다. 평화롭게 하나로 만든 경험이 있는 유럽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떻게 바꿀 수 있었는지 들으려는 의도다. 윤덕룡 전 연구위원은 “유럽은 수백 년간 서로 싸웠지만, 지금은 한 나라처럼 바뀌었다. ‘평화롭게 하나의 땅으로 만들자’는 유럽인들의 꿈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포럼에선 생태, 평화 세션에 국내·외 석학,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비전에 대해 공유할 계획이다. 정치권 인사, 발제자 발표 등으로 이뤄진 기존 포럼과 다르다. 또 DMZ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 참여할 기회도 있다. ‘비저닝 워크숍’에 참여하면 DMZ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전문가들과 논의할 수 있다. 대중의 호응과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연구사업도 힘을 얻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탄생한 기획이다.
DMZ가 꾸는 꿈…“청년들에게 힐링 장소되길”
세 사람에겐 DMZ 오픈 페스티벌을 통해 꿈꾸는 미래가 있다. “우리(남한)끼리 굉장히 재밌게 놀면, 저쪽(북한)에서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라고 최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임 교수와 윤 전 연구위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같이 웃었다. 세 사람은 페스티벌을 통해 보편적인 가치인 생태와 평화를 외치길 바랐다. 그리고 DMZ를 지키는 동시에 남과 북의 마음 거리를 좁히길 바랐다.
최근 임 교수는 SNS를 통해 DMZ 사진을 본 20대 외국 지인에게 ‘힐링’이라는 표현을 들었다. 그는 “요즘 청년들은 자기 관심사에 따라, SNS 등을 통해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 같다”며 “DMZ가 아름답고 재미있는 장소로 떠오르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임지혜 유민지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