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경쟁의 영향으로 불안해진 정세 속에서 기술 전환을 통한 탈세계화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2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CCMM빌딩에서 열린 ‘2023 쿠키뉴스 산업포럼’ 기조강연에서 미중 갈등과 고비용의 공급망 구조 속에서 디지털화 중심의 경영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미중 패권 전망과 한국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기조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은 △탈세계화와 GVC (글로벌 공급망) 변화 △중국의 도전과 천하양분 △반도체 패권 경쟁 등 3가지 섹션으로 나눠졌다.
이 교수는 미중 패권 전쟁은 한국 경제에 위기이면서도 전략 도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2018년 트럼프 등장 이후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커졌다. 탈세계화는 금융 위기부터 시작돼 더 심화돼 가고 있고 팬데믹 이후 다자간 무역체계가 흔들리게 된 것”이라며 “트럼프 시기 저금리와 타이트한 재정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화됐다”고 말했다.
미중 패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탈세계화의 패러다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물자의 공급망은 강화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글로벌 가치 사슬의 재구성이 이뤄지며, 각 국은 국가 경제와 안보, 산업, 외교 등 전방위에 걸쳐 경쟁력 있는 새 글로벌 기술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 역시 국가 차원의 글로벌 기술 전략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의 반도체 수출제한 확대나 인플레이션방지법(IRA) 등을 통해 두 시장의 디커플링이 아예 제도적으로 고착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선 디커플링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미국과 중국 중 하나의 시장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탈세계화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선 미중 간 소수동맹형 합종연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을 표현한 ‘천하양분’을 언급하며, 이 구도 안에서 각자도생의 생존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시절 중국의 상하이 봉쇄로 미국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격차가 벌어지긴 했지만 10년 뒤에는 중국의 GDP가 미국의 90%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가치사슬(GVC)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천하양분 속 한국독존이냐 복합위기냐는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며 “중국의 독자기술화 성공이 중국 기술·제품의 세계시장 진출에 제한적일 수 있으나 한국에선 유리한 측면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은 경제성장률 1%대 전망, 4.5%의 수출 감소가 예상되며 탈세계화 극복 과정에서 구조적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또 한국은 주요 20개국(G20) 국가 중 수출은 3번째, 수입은 4번째로 높은 대외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중간재 수출 비중은 세계 평균 56.5% 보다 상당히 높은 71.4%를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탈세계화 체제에서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이같은 구조 속 한국 경제의 생존 전략으로 그는 내부 시스템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글로벌 공급망을 국내로 들여오는 리쇼어링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대중소 기업 간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역량증진형 정부의 새 역할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대중소 기업간 선순환 역할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대기업의 중소 벤처기업 M&A 활성화로 스타트업의 조기 엑시트를 가능하게 하고 동시에 대기업 직원의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의 경우 선제적으로 개입해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소 기업 간 선순환을 일으키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축소가 아닌 재정비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덧붙였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