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이재영(30)씨는 최근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를 보고 비혼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드라마인 만큼 극단적 사례를 재미로 포장한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씨의 눈엔 실제 결혼한 지인들이 겪는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씨는 “(30대가 되고) 결혼에 더 신중해지고 고민하게 됐지만, 이런 콘텐츠를 보면 역시 결혼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혼인신고를 앞둔 신혼 김효은(38)씨는 유튜브에서 ‘혼인신고 하면 바보’라는 내용의 영상을 보고 불편함을 느꼈다. ‘결혼 페널티’라며 비혼, 이혼을 조장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말라는 식의 영상이 많다”라며 “각종 플랫폼에 비슷한 포맷의 콘텐츠가 쏟아지고, 해당 콘텐츠에 자극적인 댓글들이 쏟아진다. 이런 영상을 본 사람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비혼, 이혼, 현실 육아 등을 부정적으로 다룬 콘텐츠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정부가 결혼·출산 장려 정책을 쏟아내며 청년들에게 긍정적 인식을 주려는 것과 정반대 분위기다.
비혼·이혼 등과 관련한 ‘매운맛’ 콘텐츠가 쏟아지는 건 조회수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올라온 ‘남자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라는 영상의 조회수는 1043만회에 달한다. 2018년 방송된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의 일부를 인용해 취미 생활을 즐기지 못하거나 쉴 새 없이 일해도 경제적인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가장의 부담을 다뤘다. 또 한 유튜버가 제작한 비혼주의 영상은 등록 3개월 만에 조회수 4만회를 넘겼다. 미혼여성이기에 온전히 자신에게 투자하고 즐기며 살 수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조회수가 수익으로 직결되는 만큼, 콘텐츠 제작자들 사이에선 결혼·육아를 부정적으로 다루면 ‘잘 먹힌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재테크 유튜버 임모(34)씨는 “요즘 콘텐츠로 성공하려면 ‘이혼’ ‘비혼’ ‘퇴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며 “실제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브런치스토리 등에서 관련 콘텐츠들이 인기”라고 설명했다. 유튜버 홍다빈(26)씨도 “자극적인 콘텐츠가 다른 주제보다 조회수가 잘 나오는 게 사실”이라며 “다만 이혼, 비혼 등이 꼭 결혼에 대한 환상을 깨는 건 아니다. 새 시작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지만, 미디어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실시한 ‘유튜브와 연애’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애 관련 유튜브 콘텐츠를 시청한 2030 미혼남녀 중 절반 가까이인 46.4%가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연애 관련 콘텐츠를 시청한 경험이 있는 이들도 여성 79.3%, 남성 68.0%나 됐다. 유튜브 콘텐츠가 청년들의 개인적 영역인 연애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문화및사회문제심리학회장을 맡고 있는 서경현 삼육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결혼과 출산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 콘텐츠는 이용자에게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결혼의 부정적 기능, 출산·육아 고통 등)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부정적인 부분에 대해 확증하고 편향성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혼과 출산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년의 숫자는 급감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따르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년(19~34세) 비중은 2012년 56.5%에서 지난해 36.4%까지 내려앉았다. 결혼해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 비중도 53.5%로 2018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정책과 함께 긍정적인 가족 친화 콘텐츠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재은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은 “청년들이 여러 객관적인 정보를 접해야 결혼을 할지, 아이를 낳을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환경이 만들어지도록 긍정적이고 가족 친화적인 콘텐츠도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결혼·출산에 대한) 청년들의 가치관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면서 “청년을 위한 정책 지원과 함께 인식 변화를 복합적으로 이뤄지게 하는 것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