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블랙스완, 웨이션브이, 니쥬…. 데뷔 시기도 소속사도 모두 다른 세 그룹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멤버 모두 외국 국적인 K팝 그룹이라는 점이다. 블랙스완은 벨기에, 미국, 브라질, 인도 출신 멤버로 구성됐다. 웨이션브이는 중국, 태국, 마카오, 대만 출신으로 이뤄졌다. 니쥬는 멤버 모두가 일본인이다. 데뷔 후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올해 한국에서도 정식 데뷔했다.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한 ‘한국인 없는 K팝 그룹’이 현실로 다가왔다.
“한류 마지막 단계는 글로벌화”
멤버 전원이 외국인인 최초의 K팝 아이돌은 2017년 데뷔한 보이그룹 Exp 에디션이다. 멤버 4명 모두 미국인이었다. 푸른 눈의 보이그룹은 노래 ‘필 라이크 디스’(FEEL LIKE THIS), ‘스트레스’(STRESS) 등을 냈지만 코로나19를 넘지 못하고 해체했다. 비슷한 시기 데뷔한 블랙스완은 걸그룹 최초로 멤버 전원을 외국인으로 꾸렸다. 이 그룹을 기획·제작한 윤등룡 DR뮤직 대표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한류 마지막 단계는 글로벌화”라며 “매년 진행하는 글로벌 오디션엔 유럽, 중남미 등 다양한 국적의 참가자가 모인다. 이렇게 선발한 참가자를 한국으로 데려와 2년여간 연습시킨 끝에 탄생한 그룹이 블랙스완”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기획사도 ‘K팝의 탈한국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2020년 니쥬를 데뷔시킨 데 이어 올해 미국인과 캐나다인으로 구성된 그룹 비춰(VCHA)를 결성했다. 하이브는 12개국 아이돌 지망생을 모아 오디션 프로그램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이하 드림 아카데미)를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HxG(하이브x게펜레코드)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모인 참가자들을 통해 청중과 한층 더 높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디션 프로그램 ‘A2K’(America2Korea)로 비춰 멤버들을 선발한 박진영 프로듀서는 2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외국인으로 구성된 K팝 그룹을) 사랑해주실까 했지만, (‘A2K’의) 23개 에피소드 평균 조회수가 300만뷰 가까이 나왔다”고 귀띔했다.
국적만 다양? K팝은 ‘문화 용광로’
국적만 다양해진 게 아니다. 초국적 K팝 그룹은 각 멤버가 가진 문화적 배경도 흡수한다. 블랙스완은 지난 5월 공개한 ‘카르마’(Karma) 뮤직비디오에서 인도 대표 의복인 사리를 입고 사원을 배경으로 춤을 춘다. 9월엔 인도 오디샤주에서 발생한 열차사고를 추모하는 노래도 냈다. ‘드림 아카데미’도 문화 다양성을 강조한다. 스위스에서 온 ‘드림 아카데미’ 참가자 마농은 쿠키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내 문화적 배경을 보여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며 “내가 가진 독특한 문화적 배경이 자랑스럽고 그것을 전 세계에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1세대 인도계 미국인인 라라 역시 “음악 분야에도 인도인 롤모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피부색과 관계없이 내가 그런 롤모델이 될 기회가 생겨 기쁘다”며 “모두가 각자의 문화를 공유하는 일은 중요하다. 나도 인도 문화를 사랑하고 이를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책임감 있게 ‘드림 아카데미’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의 활약이 향후 K팝 현지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사다. 데뷔 후 한국에서 주로 활동해온 블랙스완은 이달 10일부터 미국 5개 도시를 돌며 세계 팬들을 만난다. 윤 대표는 “지난달 진행한 글로벌 오디션에 브라질, 인도 출신 참가자가 많이 지원했다. 블랙스완의 활동을 보며 영감을 얻은 참가자들이 늘어난 것”이라고 짚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드림 아카데미’ 참가자 셀레스테는 “‘드림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것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고 젊은 세대가 새로운 문을 열 기회”라며 “‘드림 아카데미’ 덕분에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수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글로벌 음악시장에 진출할)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이 프로젝트가 많은 사람에게 미칠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