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히지 않는 물가의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주류부터 라면, 과일, 우유 등 안 오르는 게 없는 시대다. 정부는 물가가 오르는 품목들에 대해 밀착 관리에 나선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에 그친다는 지적이 많다. 고물가 장기화에 대한 우려만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의 생활물가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1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3.37(2020년=100)로 전년 동기 대비 3.8% 올랐다. 이는 7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으로 3개월 연속 3%대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7월(6.3%) 정점을 찍고, 이후 대체로 내림세를 보였다. 올해 1월 5.2%를 기록한 후 4월에는 3.7%로 떨어졌고, 7월에는 2.3%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8월(3.4%)부터 다시 반등해 석달 연속 3%대로 상승했다.
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정부의 기조에도 오히려 물가 흐름은 반등하는 모습이다. 앞서 정부는 10월 이후 물가가 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상을 했지만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월 소비자물가와 관련해 “물가의 추세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도 3% 초반을 유지하고 있어 계절적 요인이 완화되는 10월부터 다시 안정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1월 물가 역시 3.5~3.6% 수준으로 전망되고 있다. 향후 물가 흐름은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전개양상과 국제 유가 추이, 국내외 경기흐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국내외 기관들의 물가 전망치도 상승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8개 투자은행(IB)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지난달 2.2%에서 최근 2.4%로 높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올해와 내년 물가 전망치를 기존 대비 0.1%포인트(p) 올린 2.6%로 상향 조정했다.
사정이 이렇자 정부는 물가관리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소비자들의 물가 체감도가 높은 농식품 28개 품목의 물가를 매일 상시 점검하기로 했으며, 물가안정을 위한 현장대응팀도 신설했다. 지자체별 물가 관리를 위해 물가관리관도 운영한다.
하지만 정부의 물가안정 노력 등이 시장 논리에 맞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물가협회 관계자는 “하반기 물가는 기저효과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하향 안정세를 예측했지만 고물가 기조는 지속되고 있다”면서 “정부에선 물가안정의 일환으로 식품업계 가격인상 자제를 요구하고 있으나 기업들은 제품의 용량·크기를 줄이며 가격을 유지하는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곡물가격 변동 추이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기업은 원자재 가격의 하락분을 제품가에 적절하게 반영하고, 정부 또한 가격 통제 위주의 정책보다 인센티브 등 지원 중심의 정책 방향이 최종적으로 체감물가 안정에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물가에 대한 정부 개입이 과도하다고 귀띔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어디에도 시장 경제가 주축인 국가에서 정부가 이런 식으로 공산품 가격을 통제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미국을 비롯해 유럽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기업 제품을 붙들고 가격 올리지 말라고 강요하는 국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품 가격이 올라서 물가가 오르는 게 아니라 물가가 올라서 제품 가격이 오르는 건데 내년 총선 때까지 가격 올리지 말라는 시그널이 아니겠냐”라며 “정부는 손이 닿는 범위 내에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기업들한테 감내하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강정화 소비자연맹 회장은 “기본적으로 저소득층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품목은 가격이 어느 수준에서 제어가 돼야 하는데 (그것도) 명확치 않다”면서 “국민들이 최소한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정리해보고 그 품목에 집중해서 모니터링하거나 세금을 투입한다던가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물가 품목에 편승해 줄줄이 가격이 계속 오르는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선 수입 보조, 재정 투입 등 장기적인 가격 안정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밝혔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