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혁(26)씨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위해 어떤 케이크를 예약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케이크는 있지만, 틈틈이 블로그와 SNS를 뒤지며 유명한 곳을 찾는다. 박씨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예약해서 구매하는 건 처음이다. 가격을 알아볼수록 조금 비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케이크를 구매하는 것이 올해 취업한 기념으로 자신을 위한 작은 보상의 의미가 있고 가족들과 기념하기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미리 찾아서 구매하는 문화가 청년들 사이에 연례행사처럼 자리 잡고 있다. 케이크 구매는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와 비싼 가격, 낮은 지속성 때문에 휘발성 높은 소비로 봐야 하지만, 청년들에겐 가치 있는 지출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크리스마스 100일 전인 지난 9월16일부터 SNS와 커뮤니티엔 어떤 케이크를 살지, 지난 크리스마스엔 어떤 케이크를 샀는지, 어느 가게 케이크가 좋았는지 등을 공유하는 글이 올라왔다. X(구 트위터)에서는 “지금부터 알아보는 중인데 벌써 설레” “예약 완(료)” “다들 어디서 살 건지 좀 알려줘라” “올해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왜 이렇게 마음에 드는 게 없는지” 등의 글을 찾아볼 수 있다.
일부에선 부정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제과점 케이크는 할인 전 1만9000~5만9000원 정도에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다. 호텔 케이크는 지난해 기준 5만~25만원 정도에 판매됐다. 크기나 디자인 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지만, 크리스마스 콘셉트로 꾸며지거나 글자를 넣으면 가격이 더 비싸진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는 건 너무 사치” “그 돈이면 국밥을 사 먹는 게 낫다” “기독교 아닌 사람들은 왜 사 먹는 거지” 등의 반응들이 올라왔다.
“케이크로 느끼는 크리스마스 기분”
크리스마스 케이크 구매는 청년들에겐 크리스마스를 의미 있게 보내도록 해주는 필수 지출이다. 이해은(28)씨는 “성탄절은 1년에 한 번뿐”이라며 “기념할 수 있는 날인 만큼 조금은 비싸지만, 좋은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설명했다. 배모(31)씨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면 특별한 순간이라는 느낌이 든다”라며 “브랜드와 시기마다 달라지는 케이크 디자인도 좋다”고 말했다. 김현준(30)씨 역시 “케이크는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라 크리스마스 때마다 먹는다”라며 “그래야 제대로 즐기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케이크를 가족·친구 등과 함께 먹으면서 소중한 사람과 연말을 잘 마무리하는 느낌도 받는다. 박수정(30)씨는 “케이크를 사면 왠지 연말 분위기가 더 더해지는 것 같다”라며 “보통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케이크를 먹기 때문에 부담이 돼도 기꺼이 산다”고 했다. 최예진(28)씨 역시 “가족이나 친구,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걸 먹으며 한해 마무리를 기념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늘어난 실내 활동·소모임 영향도크리스마스 케이크 구매는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났다.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관련 검색어로 분석한 결과, 가장 검색량이 많은 시기를 100으로 할 때 2016~2019년까지 최대 검색량이 39였으나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한 2020년 59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2021년엔 100으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지난해엔 엔데믹 영향으로 47로 감소했다.
전문가는 최근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청년들에게 의미가 커진 이면엔 코로나19 영향도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이은희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주변 사람들과 만나기 어려워졌다. 집에서 시간을 잘 보내고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하는 것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이 됐다”라며 “모임 규모도 소규모로 변하는 등 그때의 변화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구매를 요리사가 음식을 하나씩 내놓는 ‘오마카세(맡김차림)’나 높은 가격대의 위스키‧와인 등처럼 ‘휘소가치’를 가진 지출 중 하나다. 휘소가치(揮少價値)는 다른 사람에게는 휘발성이 높은 무의미한 소비로 보이지만, 자신에게는 가치 있게 투자하는 소비 행태를 뜻하는 신조어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휘발성 자체가 청년들에게 재미를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라며 “이들에게 파티나 기념일 등을 보내기 위해 준비과정 자체가 소중한 순간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가격이 조금 높아도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기에 지불할 용의가 높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