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지고 대학에 다니는 청년의 수는 늘어나고, 대학에 대한 만족도는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모두가 대학에 간다. 지난 16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응시한 n수생은 전체의 35%가 넘었다. 28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대학이요? 배움보단 학점 따러 왔죠”
지난 24일 쿠키뉴스가 만난 20대 대학생들은 ‘대학’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서울 A 대학교 총학생회장인 신모(23)씨는 예체능 계열을 전공하려고 학창 시절 매일 12시간씩 연습했다. 신씨는 “입시를 준비할 땐 대학이 너무 가고 싶었다”라며 “당시엔 대학만이 목표였다”라고 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보니 대학교에서 배우는 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B 교대에 재학 중인 4학년 이모(24)씨도 학창시절 ‘최대한 좋은 학교에 가고 싶다’는 꿈을 꿨다. 하지만 이씨는 “대학에 진학하고 보니, 대학은 그저 하나의 수단이자 학업 공동체란 생각이 들었다”라며 “사람을 만나는 곳, 그 이상의 의미를 못 찾겠다”고 말했다. 20대 대학생 C씨와 D씨도 각각 “고등학생 땐 대학이 직업으로 이어지는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큰 관련 없더라”, “(대학은 인생에) 큰 의미 없다”고 했다. “배움보단 취업을 위한 학점 따는 곳”이란 반응도 있었다.
취업 어려워도 여전히 높은 대학 수요
대학을 나와도 취업은 쉽지 않다. 올해 대학 졸업생 2명 중 1명(49.7%)은 취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한국경제인협회 조사, 4년제 대학 재학생 및 졸업·예정자 졸업 예상 취업률) 이 과정에서 빚지는 청년은 늘고 있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말 기준 일반 상환 학자금 대출 연체자는 총 2만7656명에 이른다. 지난해(2만5128명)보다 10.1% 늘어난 수치다. 경기 지표가 나빠졌고, 코로나19로 청년 실업 문제가 악화된 영향이 컸다.
낮은 만족도 대비 감수해야 할 기회비용은 크다.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학교육연구소가 지난달 발간한 ‘대학생 삶의 비용에 관한 리포트 Ⅱ’을 참고하면,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 E씨(가상인물)가 대입부터 대학 졸업까지 총 5년(4년제 대졸자 평균 졸업 소요기간 5년 1.4개월)간 들어가는 비용은 총 9746만원.(입학전형료, 등록금(동결 전제), 주거비, 생활비, 취업 준비 비용 포함) 물가가 오르거나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대학생 한 명이 학위증을 받는 데에만 1억원 이상 드는 셈이다.
그럼에도 대학 수요는 여전히 높다. 올해 수능에 응시한 졸업생과 검정고시생 등 n수생 비율이 35%를 넘겨 28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의대, 반도체 학과 증원 등 ‘산업’에 무게를 두는 정부 대학 지원 정책으로 취업에 유리한 응용학과에 n수생 수요가 쏠렸다. 한정된 자리를 두고 늘어난 n수생은 고3 재학생을 밀어냈고, 또 다른 재수생을 낳았다. 비정상적인 시스템과 대학 서열화가 고착될수록, 학벌주의와 사교육은 견고해진다.
강성호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회장 겸 순천대 교수는 “‘돈을 잘 벌기 위해 대학에 간다’는 목표도 나쁜 것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대학에서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먼저 찾고, 보람이 있는 직업을 얻지 않는다면 삶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대기업 퇴사율도 높지 않나”라고 했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0인 이상 기업 500개사 신입사원을 채용한 기업 중 81.7%가 입사한 지 1년이 안 돼 퇴사했다. 절반 이상(58%)이 ‘직무가 적성에 안 맞아서’라고 응답했다.
비진학·기초학문 등 다양한 진로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대학에 꼭 가지 않아도, 실용·응용학문이 아닌 기초학문을 선택해도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진로 경로에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취업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기초학문이 계속 내몰지 말고, 국가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기초학문를 토대로 응용학문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강성호 회장은 “한국은 그동안 추격형 국가로 기능에만 집중해 왔다”라며 “앞으로 선도형 국가로 나아가려면 각 분야에 창의적이고 통섭적인 인재가 필요하다. 대학 설계나 인재 육성에 균형 있는 발전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학문이 아닌 무너진 지역 균형도 또 하나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정책팀장은 “지역은 물적 인적 자원이 굉장히 열악해 양질의 고등교육을 위해선 수도권으로 가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는데, 상위권 대학에 정부 재정 지원까지 쏠려 있어 학생들의 선호도가 몰린다. 운동장의 기울기를 재편하는 시도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