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서 1이 되기.” 6일 정규 3집 ‘집’(ZIP)을 발매하는 가수 자이언티의 목표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노래 ‘양화대교’)라며 전 국민을 위로했던 ‘히트곡 제조기’는 사뭇 겸허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 음반을 내놓기 전 공백이 길었다. KBS1 ‘TV쇼 진품명품’에서 노래를 부르고 Mnet ‘쇼미더머니’ 시즌10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활동은 이어왔지만, 정규음반을 내는 덴 6년이 걸렸다. 지난 4일 서울 합정동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자이언티는 “나는 지금 0인 상태”라며 “새로운 세대에게 내 존재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겪으며 “다른 아티스트들이 그랬듯 나 역시 위축됐다”고 했다. 노래를 내도 관객을 만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자이언티는 “음악이 막히면 뚫고 지나가면 되는데 음악 외적으로 방해물이 생기니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슬럼프를 뚫고 만든 음악은 매끄럽고 재치 있다. 재즈와 힙합을 구심점 삼아 소프트 팝, 발라드, 알앤비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타이틀곡 ‘언러브’(UNLOVE), ‘모르는 사람’, ‘V’를 비롯해 “자이언티의 뾰족한 특성”이 담긴 노래 10곡을 골라 음반에 담았다.
간만에 긴 호흡의 음반을 낸 가수는 음악 수다에 목이 마른 듯했다. 10곡을 맛보기로 들려주며 도슨트처럼 곡 소개도 했다. “감정과 관계를 쉽게 지우는 리셋 증후군에 공감”하며 쓴 ‘언러브’나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노래”라는 ‘모르는 사람’ 등 곡마다 ‘자이언티 세계관’이 묻어났다. ‘눈’, ‘그냥’ 등 재즈풍 노래를 즐겨 불렀던 그는 신보에서 더욱 본격적으로 재즈를 파고든다. 미국 그래미상을 받았던 트럼펫 연주자 베니베넥 3세와 한국 대표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 등 전문가들의 힘도 빌렸다. ‘V’엔 그룹 악뮤가 피처링했고, ‘언러브’는 영국 전자음악 듀오 혼네가 프로듀싱했다. “근본과 재미와 히트요소를 더한 피처링”이란다. ‘모르는 사람’ 뮤직비디오는 배우 최민식이 주인공이다.
자이언티의 또 다른 직업은 제작자다. 2년 전 음악 레이블 ‘스탠다드 프렌즈’를 세웠다. ‘쇼미더머니’ 시리즈 출신 원슈타인과 슬롬이 이 회사 소속이다. 슬롬은 이번 신보 제작에도 참여했다. 자이언티는 “12년간 솔로 아티스트로 생존해온 노하우”를 토대로 “미국 시장에 아티스트를 브랜딩”할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에 익숙하던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절당하고 깎이면서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새 음반을 보는 관점도 짐짓 제작자다웠다. “요즘엔 차트 1위가 예전처럼 극적인 지표가 아닌 것 같다”면서 “그보다는 장기적으로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지금의 자이언티를 음식에 비유하면 완성도 높은 한상차림 같아요. 만드는 데 시간은 걸렸지만, 좋은 재료로 정성스레 요리해 대접하는 음식 말이에요. 음반을 들은 사람들이 어느 곡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며 다음을 준비해야죠. 궁극적으로는 우아한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세련된 음악을 만들면서요. 그러려면 완성도가 높아야 하고 고민도 많아야겠죠. 태도 또한 중요할 테고요. 이 모든 역량이 갖춰지면 우아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아티스트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