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미 300석. 심 봉사가 덜컥 시주를 약속했을 때, 딸 심청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당수에 뛰어들기 위해 뱃머리에 선 심청. 몸을 던지는 순간까지도 어쩌면 아버지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을까.
부모의 빚을 대신 갚는 청년은 2024년에도 존재한다. 적금을 깨 생활비를 보태고, 대출을 받아 부모 빚을 메운다. 부모 자녀 간 모든 금전 거래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탁은 자녀의 경제 기반을 부수고 회복 불가능하게 만든다. 쿠키뉴스는 지난해 하반기 부모의 금전 요구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취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협박을 듣거나 폭력에 시달린다. 신용불량에 빠져 빚에 허덕이고, 때로는 죽음까지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사로 축소돼 드러나지 못했던 이야기다. [편집자주]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안진우(30·가명)씨는 늘 생각한다.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함 없는 삶이었다. 안씨의 어머니는 여행업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오랜 경력, 사업 수완 덕분에 고객이 끊이질 않았다. 안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만 벌면 됐다. 그러던 지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19 사태가 벌어졌다.
큰 여행사들이 쓰러졌다. 안씨 어머니가 운영하던 작은 여행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티켓을 구매한 고객들이 환불해달라며 몰려왔다. 어머니는 3000만원 빚을 내 돈을 돌려줬다. 쌓이는 사업 적자, 이자가 여기에 엉겨 붙었다. 4000만원, 5000만원, 6000만원. 빚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코로나만 끝나면 이 산업도 다시 일어설 거야. 갇혀 있다는 느낌 받은 사람들이 해방감으로 여행을 갈 거라니까. 그때까지만 참아주면 안 될까.” 맥없이 1년을 보낸 어머니가 안씨에게 말했다. 대출을 받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당장의 생활비와 공과금이 문제라고 했다. 안씨는 부탁이 강요라고 느꼈다. 거부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그를 키웠다.
은행을 찾아가 대출을 받았다. 1800만원. 안씨 수입은 월 150만원 정도였지만, 빚이 없어서 가능했다. 4년 만기일시상환 변제. 일단 월 4만원대의 이자만 내고, 원금은 4년 뒤에 갚으면 된다. 그렇게 시간을 조금 벌었다.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가족 얼굴도 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졌다. 여행이 가능할 리 없었다. 어머니는 계속 돈 문제에 시달렸다. 그 다음 해인 2022년에 두 번째 대출을 받았다. 조금 들어놨던 적금을 담보로 800만원을 더 빌렸다.
어머니는 어렵게 일군 여행사를 포기하지 못했다. 코로나만 끝나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어머니의 발목을 잡았다. 사업을 접을 수도,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오지 않을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 안씨 눈에는 어머니가 그렇게 보였다.
“갚아줄게, 다 내가 갚을 거야.”
이번에는 카드를 달라는 부탁이었다. 안씨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거절하면 어머니가 무너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는 안씨의 카드를 받아 본인 회사 단말기에 긁었다. 회사 앞으로 생긴 수익을 생활비로 썼다. 한 달에 400만원씩 긁고 다음 달 카드값이 나오면 다시 카드를 긁어서 갚았다. 원금에 이자, 이자에 이자가 붙어 1100만원이 찍힌 고지서가 날아왔다. 순식간에 카드 빚이 3600만원까지 늘었다.
안씨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매달 제가 버는 돈은 150만원밖에 안 되는데 갚아야 할 돈은 400만원씩 불어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회사일과 막노동을 병행하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요. 은행과 카드사에서 끊임없이 연락이 왔어요. 언제부터인가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편해지고 싶었어요. 차마 행동에 옮길 순 없어서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아갔어요. 우울증과 조현병 초기 증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악순환의 고리. 끊어야겠다. 안씨는 생각했다. 그래도 어머니인데, 핏줄인데, 그럴 수 있을까. 도움 받을 곳을 찾아 헤매다 서울시복지재단 청년동행센터와 연락이 닿았다. 총 5400만원의 빚, 개인회생을 하자고 했다. 어머니 반대가 심했다. 개인회생에 들어가면 안씨 이름으로 빚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해결하지 못 한 일을 아들이 책임진다는 사실도 어머니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 정도 상황이면 부모와 연을 끊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쉽지 않아요. 저처럼 가족에 애정이 많은 사람은 더요. 자식이 부모의 대출 요구를 거절할 방법은 사실 없어요. 조금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부모가 파산 신청을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자식이 어떻게 부모에게 그 말을 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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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