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미 300석. 심 봉사가 덜컥 시주를 약속했을 때, 딸 심청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당수에 뛰어들기 위해 뱃머리에 선 심청. 몸을 던지는 순간까지도 어쩌면 아버지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을까.
부모의 빚을 대신 갚는 청년은 2024년에도 존재한다. 적금을 깨 생활비를 보태고, 대출을 받아 부모 빚을 메운다. 부모 자녀 간 모든 금전 거래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탁은 자녀의 경제 기반을 부수고 회복 불가능하게 만든다. 쿠키뉴스는 지난해 하반기 부모의 금전 요구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취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협박을 듣거나 폭력에 시달린다. 신용불량에 빠져 빚에 허덕이고, 때로는 죽음까지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사로 축소돼 드러나지 못했던 이야기다. [편집자주]
얼마나 많은 청년이 부모의 금전 강요로 빚이 생겼을까. 쿠키뉴스는 전국 회생법원과 서민금융진흥원, 금융 지원 단체 등에 문의했다.
해당 사례를 데이터화한 곳은 없었다. 즉시 상담이 필요한 청년들은 언제라도 소통 가능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았다. 익명에 기대 속내를 털어놓으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댓글을 남겼다. 고민 있는 이들끼리 조언을 구하는 실정이다.
쿠키뉴스는 부모의 금전 요구로 고민하는 청년들이 많이 찾은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을 분석했다. 지난 2020년 8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네이트판에 올라온 글 중 부모 대출 관련 게시글을 추렸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공개한 판례도 살폈다.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대출’ 등을 키워드로 글을 모았다. 모두 2997건의 글을 수집했다. 이 중 유의미한 게시글 155건을 심층 분석했다. 부모 금전 요구로 구체적 어려움을 토로한 글이다.
155건 중 89건(79.4%)의 작성자는 본인의 성별을 여성이라고 밝혔다. 남성이라고 밝힌 작성자는 23건(20.5%)이다. 나이를 밝힌 110건 중 대부분인 104건(94.5%)이 20·30세대였다. 금융 지식이 부족한 사회 초년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대출, 빚 관련 상담을 많이 하는 모습이었다. 20세부터 독촉장과 고소장을 받은 작성자도 있었다. 그는 지난 2021년 10월 어머니가 본인 명의를 빌려 대출을 받아 신용불량자가 됐다고 토로했다.
부모에게 돈을 줬음에도 다시 요구받았다고 답한 건수는 155건 중 106건(68.3%)에 달했다.
청년들이 거액의 돈을 마련한 방법은 대출이다. 155건 중 대출을 받아 부모에게 돈을 건넸다는 응답은 89건(57.4%)으로 과반을 넘겼다.
자녀가 어렵게 빌려준 돈과 대출금은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 생활비 44건, 사업자금 32건, 대출 상환 18건, 주택자금 13건, 차량구입 4건, 기타 3건 등이었다. ‘어디에 썼는지 모른다’는 40건에 달했다.
억대의 대출도 있었다. 한 작성자는 지난해 1월 아버지가 본인 명의로 1억2000만원을 대출받고 연락이 두절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합병증으로 폐렴까지 와서 일을 하지 못하고 하루 라면 한 봉지로 연명 중”이라며 “다시 일어설 기운이 없다”는 글을 남겼다.
155건의 게시글에서 빌려 간 돈의 구체적인 숫자를 말한 이는 73명이다. 이들이 밝힌 금액을 더하면 24억3781만원에 이른다. 부모에게 돈을 조금이라도 돌려받았다고 말한 이는 소수였다. 이들이 밝힌 금액을 더하면 780만원이었다. 빌려준 총액의 0.3%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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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