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관련 경찰 내부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는 박성민(57)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1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박 전 부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태원 참사 대응과 관련해 기소된 경찰 간부 등 핵심 피고인에 대한 첫 선고다. 박 전 부장은 증거인멸교사·공용전자기록등손상교사 혐의로 기소됐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진호(54)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들의 지시를 받고 보고서를 삭제한 혐의로 함께 재판받은 곽모 전 용산서 정보과 경위에 대해선 징역 4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기존 자료 보존 등으로 (이태원 참사) 수사에 적극 협조했어야 하나 정반대로 사고 이전 정보 보고서를 삭제하거나 임의로 파기하고 사건 관련 증거를 인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범행은 그 자체로도 공무를 망친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고 전 국민적인 기대를 저버린 채 경찰의 책임을 축소·은폐함으로써 실체적 진실 발견을 어렵게 한 데 대해 책임에 상응하는 엄정한 처벌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박 전 부장에 질책하기도 했다. 사고 발생 직후부터 사고 원인이나 책임을 파악하기 보다는 책임 소재가 경찰 조직 내로 향할 걸 크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비극적이고 불행한 사고의 발생을 기회로 삼아 경찰 조직의 업무 범위를 사고 이전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구성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지적했다.
앞서 검찰은 박 전 부장과 김 전 과장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곽 경위에게는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박 전 부장과 김 전 과장은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경찰 수사에 대비해 용산서 정보관의 ‘이태원 할로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 보고서와 특정정보요구(SRI) 보고서 3건 등 총 4건의 정보보고서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 전 부장은 지난달 증거인멸교사죄 등으로 추가 기소되기도 했다. 부서 내 경찰관들에게 핼러윈데이 대비 관련 자료를 삭제하게 한 혐의에서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연합뉴스에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어 “참사 직전 경찰이 인파밀집을 예측하고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참사가 일어난 이후에는 도리어 관련 정보를 은폐하고 축소하기 급급했던 것과 관련해 공직자의 형사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로 의미가 작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결과 정부의 진상 규명 협조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참사의 진상규명은 일부 공직자의 형사 처벌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해밀톤관광 등 법인 2곳을 포함해 총 23명이다. 지난달에는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과 참사 당일 서울청 상황관리관 당직 근무를 한 류미진 전 서울청 인사교육과장 등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다.
이밖에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용산서 관련자 5명,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련자 4명, 최재원 용산구보건소장 등의 1심 재판이 서부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