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막내딸’로 불리며 KBS1 ‘전국노래자랑’을 이끌던 방송인 김신영이 프로그램을 떠난다. 2022년 10월 고(故) 송해 후임으로 발탁돼 전국을 누빈 지 1년5개월여 만이다. MC 교체를 보는 눈초리는 곱지 않다. 김신영이 일방적으로 하차 통보를 받은 데다, 후임 MC로 방송인 남희석이 발탁됐다는 소식이 곧바로 이어져서다.
5일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엔 ‘전국노래자랑’ MC 교체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청원이 5건 이상 게시됐다. 전날 김신영의 하차 소식이 보도된 직후 게시된 글들이다. ‘전국노래자랑’ MC를 그대로 유지해달라는 첫 게시물엔 반나절 만에 300명 넘는 이용자가 동의했다. 해당 청원을 올린 이용자는 “김신영님 덕분에 매주 챙겨보는 ‘전국노래자랑’인데 인제 와서 진행자를 바꾸자는 건 어쩌자는 거야. 진행자를 바꾸면 앞으로도 쭉 볼 마음 없다”고 적었다. 청원인 수가 1000명을 넘으면 프로그램 담당자가 답변해야 한다.
시청자 사이에서 불만이 속출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절차상 문제가 가장 크다. 김신영은 제작진으로부터 하차 통보를 일방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4일 김신영 소속사 씨제스 스튜디오에 따르면 ‘전국노래자랑’ 제작진은 MC 교체 통보를 받고 지난주 김신영 측에 이를 전해왔다. 하차 통보가 제작진 의사가 아니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KBS는 같은 날 오후 MC 교체 이유에 관한 별다른 설명 없이 “‘전국노래자랑’의 새 진행자로 남희석이 확정됐다”고 알렸다. 김신영은 오는 9일 인천 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되는 녹화를 끝으로 프로그램을 떠난다. 남희석이 진행되는 ‘전국노래자랑’은 31일부터 방송된다.
KBS 프로그램 관련 작업에 참여했던 한 방송 관계자는 “후임을 결정해 발표하는 속도가 KBS로는 이례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빠르다”고 했다. ‘후임을 내정하고 하차를 통보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신영은 ‘전국노래자랑’에 임하는 자세가 사뭇 진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2월 유도부 학생인 출연자가 나타나자 분위기를 띄우려 엎어치기를 당했다가 어깨 인대 일부가 파열됐을 정도다. 이 관계자는 “전설적인 인물(송해)의 뒤를 이어 프로그램에 합류한 만큼 부담이나 책임감이 컸을 것”이라며 “소속사가 ‘제작진이 당황해 연락했다’고 밝힌 데다 KBS 내부 사정이 혼란스러워 이번 MC 교체의 당위성이 시청자를 설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짚었다.
실제 KBS에선 지난해 11월 박민 사장 취임 이후부터 프로그램 진행자가 갑자기 교체되거나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일이 잦았다. ‘KBS9’ 사상 첫 여성 앵커였던 이소정 기자를 비롯해 ‘뉴스광장’ 등 주요 뉴스 앵커들이 박 사장 취임 전후로 프로그램 하차 통보를 받았다. KBS2 ‘더 라이브’와 KBS 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등 시사 프로그램과 KBS의 대표적인 역사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등은 갑작스레 폐지됐다. 최근엔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제작도 멈춰 세웠다. 애초 이 방송은 다음 달 18일 방송을 목표로 만들어지고 있었으나 ‘총선(4월10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결국 제작이 무산됐다.
김신영은 44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노래자랑’의 역대 최연소이자 최초 여성 MC였다. 그가 마이크를 잡은 첫 방송(2022년 10월16일)은 20·30대 이용자가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10월 시청률이 3%대까지 떨어졌으나 최근 6%대로 회복하는 추세였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시청률 하락이 문제였다면 MC와 제작진이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안을 모색했어야 했는데, 이런 소통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며 “김신영을 MC로 기용해 모처럼 젊은 세대로부터 관심받았던 ‘전국노래자랑’이 다시 주 시청층인 중장년과 노년 세대에 친근한 MC를 내세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