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추돌사고가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면허 반납률은 2%에 불과하다. 지자체들이 지원금까지 내걸고 면허 반납을 유도하지만, 고령 운전자들은 시큰둥한 분위기다.
5일 쿠키뉴스와 만난 정모(70세)씨는 최근 접촉 사고로 차량을 수리했지만, 아직 운전면허를 반납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정씨는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조건으로 지원금을 준다고 하지만, 반납할 생각 없다”며 “업무상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건 한계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차를 이용할 일이 더 많은데 면허를 반납하면 어떻게 다니라는 말이냐”고 말했다. 고령 운전자에 대한 도로 위 불안감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속도를 내지 않는 등 안전하게 운전하기 위해 더 신경 쓴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60대 운전자 임모씨는 “1회성 10~30만원 지원금은 별다른 메리트가 없다. 자차로 출퇴근하고 일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말했다. 임씨와 함께 있던 6070대 운전자들은 “반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면허를 반납하면 이동이 더 불편해진다”고 입을 모았다.
급격히 고령화되는 인구구조 속에 고령 운전자들이 늘고 있다. 이와 맞물려 고령 운전자의 빈번한 사고 소식은 ‘고령 운전이 위험하다, 아니다’란 갑론을박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평행선의 논쟁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지자체들이 논쟁에서 벗어나 운전자의 면허증 자진 반납을 유도하기 위해 지원금을 높이는 이유다.
경찰청의 ‘운전면허 소지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만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는 438만7358명이다. 전년 401만6538명에 비해 9.2% 늘었다. 사고도 늘었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지난 2일 발표한 ‘AEBS 장착 차량 고령운전자 추돌사고 감소 효과’ 분석 결과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고령 운전자 추돌사고는 2020년 3435건에서 지난해 5142건으로 49.7%(연평균 14.4%) 급증했다.
그러나 국내 운전자 절반 가까이가 65세가 돼도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AXA손해보험이 지난해 10월23일부터 이틀간 19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 1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 운전자 교통안전 의식 조사’에 따르면 65세가 됐을 때 면허를 자진 반납할 의향이 있다는 사람은 22.9%에 불과했다.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운 45.8%가 자진 반납할 생각이 없다고 응답했다. 실제 경찰청의 ‘만 65세 이상 운전자 운전면허 반납 관련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이후 만 65세 이상 운전면허 반납률은 2%대를 제자리걸음 해왔다.
“면허 반납하면 30만원” 지원금 올리는 지자체들
일부 지자체들이 고령 운전자의 면허를 자진 반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지원금 지급 등 각종 당근책을 꺼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셈이다. 이에 지자체들은 면허 반납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거나 지원금을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원금을 늘리는 게 운전면허 반납 효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AXA손해보험 조사 결과 “정책적 지원을 모른다”고 답변한 응답자가 전체의 45.7%에 달했고, 만 65세 이후 운전면허를 강제로 반납하는 법 규정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운전자는 70.0%에 달했다.
우승국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방제연구센터장은 “고령층은 버스, 지하철 등을 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운전면허 반납은 이들의 이동 자유를 뺏는 것이다. 실제 면허를 막 딴 연령층과 고령층의 사고율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지원금 지원보단 고령 운전자의 추돌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고령 운전자에 대한 각종 검사 의무는 강화되고 있으며, 특히 운전면허 반납을 유인해온 일본은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장착 차량을 소유한 고령자에게만 운전을 허용하는 조건부 면허 제도를 도입했다. AEBS 장착 차량은 미장착 차량 대비 평균 16.3% 추돌사고 감소 효과가 있다는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원의 분석 결과도 있다.
우 센터장은 자동긴급제동시스템인 AEB, AEBS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시스템이 있는 차량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일부 보조를 해줘도 고령 운전자의 실수로 인한 사고 발생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