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 가장 견고한 은행의 유리천장이 깨지고 있다. 그간 남성 은행장이 장악하던 은행권에 2013년 첫 여성 은행장이 탄생한 후 올해까지 4명이 배출됐다. 또한 4대 금융지주에서 여성 이사가 늘어나면서 금융지주 이사회에도 여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다만 이사회에 진출한 여성 이사 대부분 사외이사에 편중돼 있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토스뱅크는 최근 이은미 전 DGB대구은행 최고재무책임자를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이은미 대표가 취임하게 되면 국내 은행권 역사상 4번째 여성 은행장이 탄생하게 된다.
은행장에 여성이 등용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3년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 선임되며 한국 역사상 첫 여성 은행장이 탄생했다. 이후 약 7년이 지나 2020년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이 취임하며 두 번째 여성 은행장이자 민간은행 첫 여성 은행장이 나왔다. 유 은행장은 한국씨티은행에서 기업금융에 특화된 은행으로 키우겠다는 목표하에 소비자금융사업 폐지 과제를 완료하고 지난해 말 연임에 성공했다.
이후 2022년 세 번째 여성 행장으로 강신숙 Sh수협은행장이 취임했다. 강 행장은 최연소 여성 부장, 수협 최초 여성 본부장, 수협 최초 여성 상임이사 등을 거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유명순 행장의 임기가 2026년 10월, 강신숙 행장 임기는 2024년 11월인 것을 감안하면 이은미 대표까지 취임할 경우 올 한해에 3명의 여성 은행장이 함께 활동하게 되는 셈이다.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여성 사외이사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4대 금융지주는 9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신규 추천했다. 선임이 마무리되면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총 32명 중 여성 사외이사는 10명(약 31.3%)으로 30%를 최초로 넘긴다. 기존에는 KB금융과 신한금융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 사외이사가 1명에 불과했다.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이 여성 사외이사를 각각 2명으로 늘리면서 여성의 비율이 높아졌다.
하나금융의 경우 신임 사외이사에 여성인 윤심 전 삼성SDS 부사장을 추천하면서 여성 사외이사가 기존 원숙연 이화여대 교수까지 포함 총 2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우리금융은 이은주 교수와 박선영 교수를 사외이사로 신규 추천해 여성 사외이사를 2인으로 확대한다. KB금융의 경우 권선주 이사를 중임 추천하고, 조화준·여정성 등 2명을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올렸다. 신한금융은 송성주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를 신임 추천했다. 기존 윤재원·김조설 이사 2명을 포함할 경우 여성 사외이사는 3명으로 늘어난다.
이처럼 은행권이 성 다양성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사회의 성 다양성 확보를 명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 뒤 여성 이사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대부분 사외이사에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5대 KB·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 임원 중 사외이사가 아닌 경우는 9명뿐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곽산업 디지털사업그룹 부행장 등 3명의 여성 임원을 두고 있으며, 하나·농협은행이 2명, 신한·우리은행은 1명만 있다. 여성 행장을 선임한 것 또한 특수은행이나 인터넷은행, 외국계은행에서만 존재하고 5대 은행에서는 여성 리더가 배출되지 않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이 마련된 이후 이사회의 전문성, 성별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점차 구성원 내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는 상황”이라며 “보수적인 영업환경을 가진 업권인 만큼 변화도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