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낮 기온은 전국적으로 10도 안팎, 부산은 최고 18도까지 오르면서 봄이 성큼 다가옴을 실감했다.
언제쯤 겨울이 가고 봄이 올까 생각했던 것도 잠시, 괜스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변덕스런 마음을 안고 겨울이 가기 전 몸을 일으켰다.
2월 막바지에 떠났던 울산 여행.
이대로 겨울을 보내기는 아쉽고 채 풀리지 않은 날씨에 멀리 떠나기도 부담스러워 태화강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뚜벅이 생활 27년 차.
울산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태화강 동굴피아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20여 분을 달리자 길게 뻗은 태화강이 버스 창 너머로 펼쳐졌다.
익히 듣기만 했지 태화강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과연 우리나라 2호 국가정원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곳이었다.
아뿔싸, 경치를 감상하는 사이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 버렸다.
한 정거장 지나서 내린 탓에 20여 분을 다시 걸어야 했지만, 끝없이 뻗은 태화강 둔치를 따라 산책이라고 생각하며 걸으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태화강 국가정원 관광지’라고 검색하면 꼭 나오는 ‘태화강 동굴피아’
표를 구매하고 입구에 들어서면 안내원이 안전모를 나눠 준다.
동굴피아의 경우, 일부는 실제 동굴을 개조해서 만들었기에 머리 위로 구조물이 떨어질 수 있어 안전모 착용을 필수로 권하고 있다.
총 4개의 동굴 중 제1동굴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식량 창고로 쓰였던 곳이다.
당시 울산에 살던 조선인들에게 식량을 강탈해 현재 동굴피아에 위치했던 동굴과 광산에 쌓아놓은 아픈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제2동굴부터는 문화공간으로서 볼거리와 체험 거리를 제공한다.
반짝이는 은하수 터널과 실감 나는 동물 모형 유등을 구경하며 곳곳에서 기념사진을 남길 수도 있다.
길게 이어진 동굴 터널을 지나다 보면 만남의 광장으로 갈 수 있는 터널이 등장한다.
영화 <007>의 제임스 본드로 빙의해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는 미션을 통과해야지 만남의 광장에서 쉼이라는 보상을 누릴 수 있다.
만남의 광장에서는 곤충과 박쥐 전시를 구경하고 울산의 또 다른 명소, 반구대 암각화와 관련된 탁본·스탬프 체험을 할 수 있다.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약간의 값을 내고 촬영할 수 있는 곳도 마련돼 있다.
제3동굴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구비돼 있는 바다 동물 도안에 색칠 후 스캔하면 디지털 수족관에서 움직이는 나만의 바다 친구를 만날 수 있다.
마지막 제4동굴은 계절마다 다르게 구성되는 공간으로, 포토존으로 이용하기에 적합하다.
동굴피아에서 나서니 어느덧 점심 먹을 시간이 됐다.
MBTI J유형은 여행 계획 중, 음식점을 찾아가는 건 기본이다.
예정된 목적지로 향하던 중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가마솥에서 튀긴 도넛이라니.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기자에게 계획형 J에서 즉흥형 P로 바꾸는 융통성 정도는 필요하다.
가마솥에 식용유를 한가득 넣고 갓 튀겨낸 도넛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고구마 앙금, 녹두 앙금, 팥앙금 등 손님의 입맛을 몰라 다 준비한 도넛들을 내 입맛에 맞춰 담았다.
계산 후 흑설탕에 취향껏 셀프로 묻히면 끝.
잠깐의 방황을 즐기고 다시 계획대로 움직여야 할 때이다.
태화강 국가정원 먹거리 골목 입구에서 도보로 5분 채 안 된 거리에 배말칼국수와 톳김밥을 파는 식당이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식에다 체인점이라서 울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 음식은 아니지만,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사람들이 많이 들리는 맛집으로 꼽힌다.
처음 마주한 배말칼국수는 녹갈색의 사골을 우린 것처럼 눅진한 느낌의 국물이 인상적이다. 거기에 계란 지단에 새겨진 ‘배말’이 앙증맞다.
따개비를 뜻하는 ‘배말’이지만, 정말 따개비를 넣고 끓인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눅진하고 고소한 국물에 해물의 향이 깊이 배어 있다.
톳김밥 또한 별미이다. 한입 가득한 크기에 양념에 잘 버무려진 쌀밥이 계란과 홍단무지, 시금치와 톳을 감싸안고 있다. 일반 김밥과 다른 점은 톳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참기름’
참기름에 찍어 먹어야 톳김밥을 온전히 맛봤다고 할 수 있다.
이 식당에서는 3대째 울산에서 이어오는 60년 전통의 옛간 참기름을 내주고 있다.
부른 배를 안고 소화도 시킬 겸 다시 도보 여행을 나선다.
태화강 국가정원을 처음 방문하는 기자가 향한 곳은 ‘십리대숲 은하수길’.
밤에 오면 대나무 숲길이 조명 연출을 통해 은하수 길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낮에 왔지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덕분에 걷기만 해도 청량해지는 기분이다. 그야말로 ‘힐링 숲’.
태화강을 따라 약 십 리(4km)에 걸쳐 펼쳐진 대나무숲, ‘십리대숲’
그래서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미로 같다. 걷다가 힘들어서 나가고 싶어도 출구를 찾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니 참고해야 한다.
그래도 관리 요원들이 무전기를 차고 돌아다니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은 한시름 놓인다.
중간에 이탈(?)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대숲 속에서 나무에 빙 둘러싸인 기분이다가 어느새 빛이 스며드는 곳을 따라가 보면 태화강변 산책길로 빠질 수도 있다.
배말칼국수와 톳김밥에 이어 대나무숲까지. 녹색 세상에 빠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쯤 중앙광장으로 나가는 길을 발견했다.
이제 마지막 행선지로 향한다.
십리대숲을 모티브로 한 빵과 라테를 파는 곳. ‘대숲 빵’과 ‘대숲 라테’를 안 먹고 여길 떠난다면 왠지 섭섭할 것 같은 기분이다.
말차를 좋아하는데다 비슷한 맛일 거라는 생각에 얼른 주문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부담스러운 눈빛이 느껴진다.
“정말 빵과 라테만 먹을 거야? 나도 대나무 좋아하는데….”
판다의 애절한 눈빛에 못 이겨 대나무 머핀도 주문. (절대 기자가 먹고 싶어서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차나 녹차류 디저트보다 풀 내음이 더 많이 나는 맛이다.
‘대나무 가루를 넣어서 만든 디저트’라는 이색적인 느낌을 즐겼다면 한 번 경험해 본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다음에는 말차 라테와 말차 케이크를 먹어 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십리대숲 나들이에 안성맞춤인 디저트인 것은 확실하다. 돈값은 한 셈이다.
아직도 날씨가 쌀쌀하다. 점점 겨울이 길어지고 봄은 짧아지는 느낌이다.
잘 가꿔진 공원, 맛있는 음식, 편리한 교통수단 등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건 많아지는데 당연했던 것들이 아쉬워진다.
사계절, 꽃, 맑은 공기, 바람, 별…. 언젠가 아쉬움을 넘어 영영 보지 못할까 싶어 괜스레 아련하다.
그나저나 그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춥고 지쳤으니 집으로 가자!
울산=윤채라 기자 cofk1102@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