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저는 B급 교사인가요?”
김지희 초등교사(전교조 청년사업국장)는 ‘교원평가’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초등학교 2학년 24명을 맡은 담임인 그는 일주일에 수업 23시간을 하며 연수도 틈틈이 챙기는 S급 교사라 자부했다. 체육 전담이 있어도 맡게 된 체육 업무를 열심히 한 결과, “일 잘 한다”는 칭찬과 함께 ‘방과후 자율수강권’이란 업무만 늘었다. 수업도, 아이들을 챙기는 것도, 학교 업무도 S급으로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B등급’이라는 성적표만 남았다.
김 교사는 28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교원평가 폐지, 차등 성과급 수당화 요구’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말했다.
23년째 허공을 도는 메아리가 된 외침이지만, 교사들은 올해도 거리 위에 섰다. 이들은 교육부를 향해 “교육공동체를 위협하는 교원평가를 즉각 폐지하고, 차등 성과급을 수당으로 전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원평가는 매년 9~11월 교사의 학습 및 생활 지도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가 익명으로 5점 점검표(체크리스트), 서술형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22년 세종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부 학생이 교사를 신체 부위를 비하하며 성희롱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특히 지난해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 이후 교권 보호 목소리가 커지면서, 교원평가가 교권 침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교원 평가와 성과상여금 등 경쟁 중심의 교원정책은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사들을 교원평가 폐지에 힘이 실리자 교육부는 지난해 교원평가 시행을 유예하고, 서술형 평가만을 폐지하기로 했다.
박성욱 전교조 정책실장은 “교육부는 현장 교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어김없이 교원 성과상여금 지급계획을 밝혔다”고 지적했다. 전교조가 지난 15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온·오프라인에서 진행하고 있는 ‘차등 성과급 수당화와 교원평가 폐지 촉구’ 서명에 벌써 2만여명이 넘는 교사가 참여했다.
이기백 전교조 대변인은 쿠키뉴스를 통해 현장 교사들의 불만을 전하기도 했다. 이 대변인은 “(교원평가) 다면평가 항목을 보면 생산한 공문서의 양, 상급기관에 제출한 보고서의 양 등이 평가 기준으로 들어간다”며 “교사의 본질 업무인 교육활동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기에 결국 행정업무를 더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현장에선 계속 이어졌다”고 부연했다.
이들은 교원평가와 차등성과급제가 현장 교사 분열과 공교육 균열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손지은 전교조 부위원장은 “교원평가라는 경쟁을 통해 이익을 보는 쪽은 교사도, 학교도, 학생도 아니라 교육부”라며 “서로를 밟고 올라 더 높은 등급을 받게 만드는 구조 속에 협력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차등성과급을 먼저 도입한 해외 각국의 현황도 소개했다. 차등성과급을 도입했던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도 이미 폐지하거나 부작용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윤미 전교조 유치원위원장은 “영국은 성과급 지급에도 교직을 떠나는 교사들이 늘어 해외에서 교사를 빌려 오는 형편이고, 미국 뉴욕주는 성과급제를 도입 3년 만엔 폐지했다”며 “성과급은 나라 안팎에서 명백히 실패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학교 폭력 해결 사안에 기여한 교원에 가산점을 줍니다. 사실 학교 폭력 조치는 학급 선생님뿐만 아니라 학교 교원들이 공동 대응하는 거예요. 막상 가산점이 부여되는 것은 학급 담임 또는 업무 담당 교사이다보니 이러한 행정을 누가 할 것인지를 놓고 경쟁이 발생합니다. 피해 학생이 잘 회복되고 가해 학생도 잘 조처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심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이기백 대변인)
이들이 교원평가와 차등성과급제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대변인은 “교원 평가와 성과급제가 교원이 교육 활동을 집중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본다”며 “다만 목적을 살리기 위해서는 학교 내 교사들이 협력하고 교육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평가를 해야 된다. 수업 활동이 기준이 되거나 교사의 전문성을 기준으로 하는 지표 없이 현재의 방식으로 교원평가를 하는 것은 문제”라고 강조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